[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②] 안기부 면접관과 마주하다

“(안기부 입사 시) IQ검사, 인성검사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할 겁니다. 그 후로는 공수훈련과 해상침투훈련 등 힘든 과정을 겪을 겁니다.”(본문 중에서) 

나는 36년 전 봄날의 하루가 적힌 일기장을 보고 있다. 나는 종로5가 뒷골목 낡은 빌딩의 한 사무실에서 안전기획부의 인사담당 요원을 만나고 있었다. 푸른 와이셔츠에 감색 넥타이를 맨 세련된 옷차림의 남자였다. 무테안경을 쓴 하얀 얼굴에서 엘리트의 기운이 풍겼다. 그가 말했다.

“그동안 살아온 자서전을 써주시면 조직 내의 다른 파트로 넘기겠습니다. 그러면 그 부서에서는 자서전의 진실성을 조사하고 엄 선생님에 대한 광범위한 신원조사가 있을 겁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그는 나를 민감하게 관찰했다. 그 후 보름쯤 흘렀다.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경상도 선산의 탑리에 우리 집 8촌 친척들이 살고 있는데 난리가 났어요. 정보기관 사람들이 경찰서에 나타나 우리 집안사람들의 6.25전쟁 때 행적을 알아보고 있더래. 좌익활동이나 빨치산을 한 적이 없는지 말이야. 우리 친척 중의 한 사람이 경찰관인데 집안 일이라 몰래 알려줬대. 모두들 겁을 먹고 있어. 도대체 왜 그러지?”

정보기관의 치밀한 신원조사 같았다. 그들은 처가의 먼 친척까지 터는 것 같았다. 나는 인사담당 요원으로부터 두번째 찾아가야 할 비밀장소의 위치를 연락받았다. 정보기관은 여러 곳에 위장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퇴계로의 불결해 보이는 음산한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취한 사람이 뱉은 토사물이 길바닥에 벌겋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 골목의 깊은 곳에 낡은 회색 4층 건물이 있었다. 빌딩 이름도 입주해 있는 사무실 간판도 없었다. 음산한 기운만 건물 주변에 서려있는 것 같았다. 입구에 짙게 썬팅을 한 작은 유리문이 있었다. 타인의 출입을 거부하는 듯 보이는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고 입구에 경비실 같은 유리 박스가 있었다. 그 곳도 짙게 썬팅을 해서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유리박스 중간에 나무 선반이 붙어있었고 그 가운데 벨이 하나 덩그렇게 붙어 있었다. 용무가 있으면 그걸 누르라는 것 같았다.

나는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들어오시죠”라는 쇳소리가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이어서 ‘철컥’ 하고 메마른 금속성 소리가 나면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의 문이 열렸다. 길고 음산한 복도가 나타났다. 작은 방들이 연속되어 있었고 그 중 한 방의 문만 반쯤 열려져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 같았다.

그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방이었다. 시멘트 바닥 한가운데 철 책상이 놓여 있고 앞뒤로 접이식 철 의자가 놓여 있었다. 조사실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철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철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50대쯤의 남자가 서류철을 손에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귀가 뾰족하고 볼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박쥐를 연상케 하는 사나이였다.

그는 서류철을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그 안에 내가 쓴 자서전이 보였다. 빨갛고 파란 밑줄들이 촘촘하게 그어져 있었다. 내가 쓴 자서전을 여러 번 읽고 세밀하게 분석한 것 같았다.

“변호사 하면 되지 왜 우리 조직에 들어오려고 하죠?”

그가 달갑지 않은 어조로 내뱉듯이 말했다. 그의 작은 눈이 나를 꿰뚫듯 탐색하고 있었다. 고갈된 우물같이 그는 감정이 거의 없어 보였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생각했다. 입에 발린 말이나 거짓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안되면 그뿐이다.

“비밀정보기관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서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한번 구경하고 싶다고 할까”

“구경할 거 없어요.”

그가 내 말을 단번에 튕겨냈다.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변호사 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그럭저럭 아직 먹고 살만한 직업이기는 합니다.”

“그러면 그냥 살지 왜 들어오려고 해요?”

“구경하고 싶어서 그런다니까요. 솔직하게 말한 건데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할 걸 그랬나? 그런 거 원해요?”

“아니 그런 가짜는 필요 없어요. 통하지도 않구요.”

“그건 그렇고 안전기획부 요원 하면 월급은 얼마나 받아요?”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것도 비밀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변호사보다 작아요.”

“이 조직에 들어오려면 절차가 어떻게 돼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냥은 안되고 여러 테스트 과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구경하겠다는 호기심만으로 그 과정을 통과할 수 없을 거예요. IQ검사, 인성검사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할 겁니다. 그 후로는 공수훈련과 해상침투훈련 등 힘든 과정을 겪을 겁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 정보조직을 구경하실 수도 있지만 새까만 상공에서 낙하산을 메고 떨어지라고 하면 겁먹고 스스로 안한다고 할걸요? 우리 조직은 인재가 필요하니까 일단 환영합니다만 들어와도 실망할 겁니다. 애초에 안 들어오는 게 좋을 거예요.”

이왕 내친 길이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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