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대통령이란?···”욕 혼자 다 먹고 무한책임 지는 자리”

1960년대 중반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육영수 부처

어느 날 저녁 사당역 근처 음식점에서 전직 고위 경찰관을 만났다.

“경찰 생활 30년 해오면서 평생 정보통으로 돌았어요. 파견도 많이 나갔어요. 박정희 대통령 때는 민정비서실에 있었죠. 박정희 대통령이 강원도 순시를 가신다는 일정이 한달전에 잡혔었죠. 제가 미리 가서 그 지역의 숙원사업이 뭔지 알아봤어요. 당시 묵호에 저탄장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석탄 가루 때문에 빨래를 널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그 지역의 정보과 형사를 데리고 골목골목을 다녀봤죠. 그리고 그걸 정확히 보로서로 써서 대통령에게 올렸죠. 대통령이 순시할 때 마치 직접 아는 것처럼 도지사에게 지시하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머리가 보통 좋은 분이 아니었어요.”

그가 잠시 말을 쉬었다가 이어서 했다.

“요즈음은 장관 임용 때 여러 검증문제가 대두되는데 대통령 정보팀이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거기서 조용히 가서 모든 걸 파악하고 보고를 올리니까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게 없죠.”

그의 말을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란 직책은 모든 욕을 혼자 다 먹고 책임 지는 자리였다. 잘한 점은 증발되고 비난의 기억들만 남아있다. 내가 오랫동안 해온 변호사는 흉악범에게서도 선한 면을 발견해서 법정에 올려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 훈련 탓인지 누구를 봐도 악보다는 선한 면을 찾게 된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잘살게 된 건 시대의 흐름을 타고 그때그때 거기에 걸맞는 지도자가 나타나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대학 시절 정치학전공인 김상협 교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냉전시대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소련 둘 중 하나에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는 걸 알았어요. 미국과 소련 어느 한쪽이 한반도를 점령했다면 통일된 나라가 세워졌겠죠. 그들이 반씩 나눈 한반도에서 통일된 나라를 세운다는 건 관념이라고 봤어요. 그때 우리는 미 군정하의 점령지에 불과했죠. 점령지의 신세를 벗어나 국가를 세운 게 이승만 대통령의 공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부자나라로 만들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역사에 해박한 선배 변호사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이 일본 육사에서 같이 훈련을 받은 아는 사이래. 후에 베트남 참전국 원수들이 모인 마닐라 회의가 있었지. 그때 우리보다 훨씬 잘 살던 필리핀측이 마닐라 1급호텔의 7층 좋은방은 다른 나라 원수들에게 배정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6층의 구석방을 준 거야. 못사는 나라라고 무시하고 홀대한 면이 있지. 더구나 마르코스와 박정희가 같은 일본육사 출신이면서 말이야. 그때 대통령과 같이 간 사람들이 이를 갈면서 앞으로 잘산다는 너희 나라 여자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식모 노릇을 할 날이 있을거라고 했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잖아?”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 시절 잘 살아 보려는 오기가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청와대 참모들. 박관용 비서실장(대통령 오른쪽), 이원종 수석(맨 오른쪽) 등이 보인다.

얼마 전 김영삼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던 분을 만나 이런 얘기를 들었다.

“대통령과 민주화 투쟁을 수십년 함께 한 동지가 있었어. 그런데 뒤로 돈 문제가 있다는 정보 보고가 내게 올라온 거야. 민정수석인 나의 관할 사항인데 어떻게 대통령에게 보고할까 고민이더라구. 깊은 정이 흐르는 사람인데, 잘못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내심은 용서해 주고 싶을 거 아니겠어? 그래서 비리사실과 함께 그 사람의 문제를 조용히 덮어줄 다른 방안도 강구해서 대통령에게 갔지. 내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대통령이 잘라버리라고 단호히 말하더라구. 수십년 인연도 단칼에 끊어버리는 거야. 대통령의 그런 태도를 보면서 나도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여지없이 날아가겠구나 하고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

김영삼 대통령이 던지는 메시지는 공정이 아니었을까. 통치자는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그렇게 단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퇴임 후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은 임대아파트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한 가난한 시인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나 같이 없는 사람도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됐어요. 정부에서 돈도 주고 쌀도 줍니다. 의료보험으로 병원비나 약값도 거의 무료예요. 병자인 나를 목욕시켜줄 사람도 일정 기간마다 보내줍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한번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복지정책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화두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여러 비난이 있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시민들을 보면서 저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살리나 하고 걱정을 했다는 걸 그의 회고록에서 봤다.

노태우 대통령은 상품을 만들어 공산권에 물건 파는 시장들을 개척했다. 그게 북방정책이었다. 당시 사업가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자원들을 선점하기 위해 러시아의 여러곳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고르바쵸프와 만나 러시아의 자원을 한국으로 값싸게 사들이는 방안을 강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12년 10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의 인천 송도 유치가 확정된 후 이명박 대통령이  송도컨벤시아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협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이 대통령,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한덕수 GCF 민간유치위원장,

이명박은 뒤에 대통령이 된 후에도 원전을 팔기위해 중동의 국가원수에게 하룻밤에도 여러번 전화를 해서 대통령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통령들 마다 나름대로 수행하려는 사명이 있고 공이 있다. 그런 다양한 색깔의 숨겨진 공도 보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들의 수고에 대해 한번 짧은 변호를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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