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팔자 고치는 법
변호사는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일을 해 주면 참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애환과 억울함을 들어주기도 하고 감옥에 찾아가 줄 수도 있다. 휘청거리는 사람을 부축하면서 그가 통과하는 어두운 터널을 함께 해 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가난한 시인을 대리해서 소송을 해 주고 있었다. 내 경우는 애틋한 사연들을 글로 써서 더러 발표하기도 했다. 글은 여러 사람의 마음에 촛불을 밝힐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서초동의 이웃 빌딩에서 법률사무소를 하는 선배 변호사가 그 시인에게 전해주라고 하면서 돈을 보냈다. 그 선배 변호사는 독특한 분이었다. 장인이 임종 무렵 판사였던 그에게 거액의 재산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를 물었다. 그는 장인에게 아름다운 기부를 권했다.
그리고 백억에 가까운 재산이 사회에 환원됐다. 자식에게 상속이 이루어졌다면 경제적 혜택이 큰데도 그는 장인의 선행을 이끌었다. 판사를 마치고 변호사를 하면서 그는 고시낭인들을 도와주는 데 많은 돈을 썼다.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약으로 일관했다. 그를 찾아가면 빌딩 지하 귀퉁이의 싼 밥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을 행하는 기쁨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진짜 큰 쾌락이죠. 그걸 아는 사람은 하고 또 하게 되죠.”
어제 짤막한 한 기사를 읽었다. 진주에서 오십년이 넘도록 한약방을 해온 분의 소리 없는 선행이었다. 한약방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한 그는 열여덟 살에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한약방을 열었다. 다른 약국보다 싸면서도 좋은 약재를 쓰는 그의 한약방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그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말없이 서랍 속 흰 봉투를 꺼내 돈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의 돈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가정폭력으로 시달리는 여성을 위해 쉼터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처지의 극단의 공연장을 구해주기도 했다. 그는 돈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려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어”
주위에 보면 여러 형태로 조용히 선(善)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해 친자식같이 키우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영등포 뒷골목의 작은 의원의 의사는 수많은 노숙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기도 했다. 역전에서 굶는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기도 하고 사회의 곳곳에서 소리없이 눈이 내리듯 적선(積善)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팔자를 고치는 법’이라는 명리학 전문가 조용헌씨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팔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타고난 사주팔자가 있는 것 같아요.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있는 거죠. 그걸 불교에서는 카르마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신의 섭리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그걸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저는 그동안 명당에 묘를 쓴다던가 집터를 잘 잡아야 한다는 걸 많이 얘기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사람이 죽으면 거의 화장을 합니다. 사람이나 집안의 운에 명당의 효과를 말하기가 힘든 시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도 아파트를 많이 짓는 현대에 그 영향력이 아주 미미해졌다고 말할 수 있죠. 저는 사람들이 팔자를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기도와 독서’를 들고 싶습니다. 영빨이 있는 사람들은 간절한 기도를 하면 팔자가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영빨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가 잘 안 되요. 그런 사람들은 많은 독서를 하면 팔자가 바뀔 수 있습니다. 책은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고 그런 힘이 생기면 팔자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들으면서 그가 썼던 글의 내용이 떠올랐다. 조선의 선비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작은 책상위에 책을 놓고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런 독서가 불교의 명상이나 참선 같은 선비들의 기도방법이라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팔자를 고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적선(積善)이예요. 미래를 향한 투자라고 할 수도 있고 좋은 씨를 뿌려둔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적선을 한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운이 돌아옵니다. 물론 당대에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백년 이백년의 단위로 보면 그 자손들에게 꼭 큰 복이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물방울 같은 작은 선행이라도 하고 싶다.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좋다. 누구에겐가 따뜻한 글 하나라도 보내고 싶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병을 채우듯 그런 작은 선을 행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