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윤석열 당선인 존경받는 원로들 자주, 많이 만났으면”

검찰총장 시절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그의 발길이 존경받는 원로들에게 자주 옮겨지길 바란다.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와 장관을 지낸 원로 정치인을 만났다. 옛날에 잠시 그의 부하로 근무한 인연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세상 얘기를 했다. 이미 80대에 진입한 그 분은 검사 출신으로 민정수석비서관과 국회의원, 장관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상관과 부하의 관계였지만 이제는 진한 인간관계만 바닥에 남은 것 같다.

“며칠 전 운전기사가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구. 나이가 일흔여덟살이 되니까 더 이상 핸들을 못 잡겠다고 하는 거야. 36년을 나하고 같이 지냈어. 여비서도 나하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같이 일했어.”

그는 그런 인품이었다. 지위나 돈보다 끈끈한 정이 인간을 묶는 것 같았다. 지위도 부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 외에 정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어떻게 보십니까?”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정치를 한 분도 아니고 정책을 연구한 경험도 별로 없어서 그런지 토론회에 나와서 하는 걸 보면 국가의 큰 줄기를 보는 눈은 아직 별로 없는 것 같더구만. 그렇지만 자기 학습능력이 대단한 것 같아. 공부를 하면서 쑥쑥 크는 게 보여. 뚝심 있는 고집으로 버티고 시대의 바람이 불어줘서 대통령이 됐는데, 앞으로는 그 고집을 잘 다스려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야. 주위에 지혜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겸손하게 듣고 배워야겠지.”

-정치 하실 때 옆에서 봤던 대통령들은 어땠어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머리가 번쩍이는 엘리트 참모들이 많았어. 대통령이 ‘물태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그들의 의견을 반영했지. 반대 진영의 정책도 과감히 수용했잖아. 북방정책도 그렇고 말이야. 그때 나라가 발전했지. 김영삼 대통령을 민정수석으로 모셨는데 전반부에 뭔가 이루어내려고 뚝심을 가지고 노력을 많이 했어. 내가 국회의원을 할 때 보면 툭 하면 휴회를 하고 거의 회의장이 개점휴업 상태가 대부분이었어. 그런데 국회의원 300명 중 한 사람만 회의장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거야. 나와는 당적이 여야로 나뉘어 있지만 존경스럽더라구. 그래서 가까이 가서 뭘 공부하나 봤지. 다양하더라구. 남북문제라든가 여러 정책에 대한 나름의 깊은 철학이 있는 거야. 일반 정치인과는 다르게 국가를 이끌어가는데 핵심 줄기를 아는 거야.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였지. 그분이 김대중 대통령이야.”

-대통령은 큼직한 줄기들을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국가라는 나무에서 봐야 할 큰 줄기는 어떤 거죠?

“그동안 인위적으로 편 가르기를 더 심화시켜서 국민들이 철저히 나누어졌잖아? 지금 상황이면 ‘호남공화국’이 따로 세워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야. 국민들의 마음이 서로 녹아들어 다시 합치게 해야겠지. 윤석열 대통령이 호남에서 얻은 작은 지지율을 희망의 불씨로 삼아 키워야 할 거야. 그 지역의 신망이 있는 사람을 잘 쓰면 돼. 다른 큰 줄기는 과학기술이야. 과학을 담당할 부총리 자리를 만들어 앞으로 20년 우리 먹거리를 확보할 기술을 개발하도록 이끌어야 할 거야. 현대에는 땅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강대국이니까 말이야. 대통령의 임무는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게 가장 먼저지.”

살아오면서 주위에서 지혜있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분들은 시대의 나침반이었다. 야심이나 다른 기대가 없어야 시대의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인사 문제도 보좌를 하셨는데 인재 등용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대통령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자리 얻기 위해 선을 대려고 난리를 치지. 재벌들도 대통령 측근이 누군가 민감하게 살피고 말이야. 대통령은 어떤 걸 깨달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강직한 사람들을 찾아서 써야 해. 일례로 내가 예전에 그런 모델이 되는 분을 본 적이 있어. 멋있게 돌아가시기도 한 분이지만 말이야. 그분이 문교부 장관을 할 때인데 어느 모임에 갔다가, 이화여자 대학생이 결혼을 하면 퇴학을 당하는 사실을 안 거야. 또 은행의 여직원이 임신을 하면 은행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 그 얘기를 듣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어. 자기 힘으로 안 되는 부분은 대통령을 만나 고치자고 얘기했지. 하여튼 뭔가를 듣고 깨달으면 바로 행동하는 분이었어. 그분은 공직자로서도 깨끗했어. 부인이 음식점을 해서 남편을 뒷바라지 했지. 그분은 자기 전에 화이트 와인을 한잔씩 하는 버릇이 있었어.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날은 저녁에 평소같이 침실로 갔다가 다시 나오더라는 거야. 그러면서 오늘은 한잔을 더 먹어야겠다고 하더래. 그리고 들어가서 잠이 들고 다음날 천국으로 가셨지. 멋진 죽음 아니야?”

나는 그에게서 국가가 바라보아야 할 좌표를 배운 것 같았다. 국가라는 거대한 배가 그가 말한 쪽으로 키를 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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