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좁은 시각으로 내는 결론, 나는 보류한다”
청계천에서 거지 생활을 하다가 살인범 누명을 쓰고 20년 넘게 감옥생활을 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정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한 증인들이 모두 도망을 가서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를 살인범으로 조작한 형사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그가 이렇게 원망했다.
“정말 하나님은 사람도 아니야. 공정한 하나님이라면 나를 이렇게 평생 억울하게 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며? 개뿔. 죄 없는 나 같은 인간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지나 말라고 하지.”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나도 이해하기 힘든 모순된 하나님이었다. 성경을 보면 부름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된 사람은 적다고 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불러놓고 마음에 안 들면 인정사정없이 내쫓았다.
얼마 전 뇌성마비 여성을 변호한 적이 있다. 온몸이 마비되어 거의 식물인간 상태였다. 그런데도 지능은 거의 천재 수준이었다. 그가 지은 시가 찬송이 되어 천만명의 신도들에게 불리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 한 개로 자판을 움직여 시를 쓰고 글을 썼다. 그가 썼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내 힘으로 땅을 밟아본 적이 없다. 말을 해 본 적도 없다. 판자집 어두운 뒷방이 나의 세계였다. 친구도 없다. 나는 방안에서 대소변을 봐야 했고 평생 음식물쓰레기나 만들어 내는 존재였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강물 근처에 갈 수도 없었고 약을 사러 갈 수도 없었다. 차라리 미치고 싶었는데 미쳐지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하나님은 장난삼아 나를 만든 것 같다. 나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느날 주님이 나의 골방으로 찾아왔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신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가 공평하냐고 울면서 대들었다.’
하나님은 확실히 모순이 많은 것 같다. 사랑하신다. 동시에 미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사랑인 동시에 태워버리는 불이기도 하다.
성경속 등장인물들을 보면 말과 행동이 일치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욕하고 교회의식을 비웃었다. 그러면서 주위 눈을 의식하고 율법에 나와 있는 성결예식을 하고 예물을 바쳤다. 유대인들의 반대를 꺼려서 새로 얻은 제자에게 할례를 행하기도 했다. 율법을 욕한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비웃은 사람이 할례를 베풀었다.
세상의 인간들은 그런 모순으로 꽉 차 있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고 처음과 끝이 똑같은 완전한 사람이 드물다. 나도 모순덩어리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읽고 나도 그렇게 청빈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동시에 화려한 고급아파트에서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광야에 홀로 서서 진리를 말하는 수도자 같은 존재를 선망했다. 동시에 수 많은 군중들에게 박수를 받고 떠받들어지는 인기스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것 같았다. 칠십년을 살아보니 내게는 스스로 어떤 걸 결정하는 자유가 없었던 것 같다. 불공정이 가득찬 모순된 세상을 나는 살아온 것 같다. 인간의 불행은 모든 걸 자기의 생각과 기준으로 보는 데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경솔하게 나의 좁은 시각으로 결론을 내는 걸 보류한다. 내 눈에 보이는 표면만 보면 다 모순이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없는 그 이면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틈틈이 소설을 써 왔다. 전반부는 착한 주인공을 계속 곤경에 빠뜨린다. 위기를 간신히 빠져나오면 더 심한 상황이 닥치게 한다. 최대한으로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착한 사람이 패배하고 악이 승리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후반부 대단원의 막에서야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게 만든다. 그렇게 재미가 있고 주인공이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이 주관하는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불이 타는 세상을 만들고 이유를 모르는 고통을 당하게 한다. 세상에는 불공정과 억울함이 꽉 차 있다. 사람들이 모순이라고 하늘에 대고 종주먹질을 한다. 그분의 후반부 계획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삶이 모순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