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높은 벼슬자리와 ‘말 잘 듣는 놈’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장면

나에게 ‘39’라는 숫자의 나이는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그때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 어떤 길을 갈까 기도하면서 그분께 물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모델은 둘이었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출세한 나였다. 다른 하나는 예수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내 처지가 그렇게 뒤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변호사였지만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았던 아직 30대였던 그때 군수나 지방의 시장직급이었다. 경찰서장도 될 수 있었다. 나는 대통령직속기구 실력자의 실세 보좌관이었다. 실세라는 것은 형식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가지며 남이 모르게 그의 그림자가 되어 실질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심심할 때면 고정적으로 부르는 4명의 심복들이 있었다. 그들과 바둑도 두고 고스톱도 치면서 정치문제나 인사를 처리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그들이 실질적인 권력자였다. 상관은 그중의 하나인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들 중 대통령의 친구인 1명은 심부름을 갔을 때 나를 보면서 “앞날이 좋을 것”이라는 화두같은 말을 던지기도 했다. 국회의원 공천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상관뿐 아니라 전임자였던 상관들도 대통령 주변에 포진되어 실질적인 두뇌가 되어 있었다. 아무 말이 없는 내게 부탁을 하라고 오히려 먼저 말해주기도 했다. 사회적인 인맥으로 젊은 시절 그만한 줄을 잡는 행운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시키는 일을 했었다. 그리고 권력의 이면을 구경했다.

대통령이 누구를 대법원장으로 할 것인가 최종적으로 두 명을 놓고 선택할 수 있게 속칭 옐로우카드를 만드는 보조를 한 적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완벽했다. 청렴성도 실력도 후배법관들 존경도도 리더십도 다 갖추고 있었다. 다른 한 분은 모든 면에서 그보다 부족했다. 그런데 부족한 사람이 대법원장이 됐다. 내가 상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야 너 같으면 말 안 듣는 놈 시키겠니? 아니면 말 잘 듣는 놈 시키겠니?”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나는 핵심 인사원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실세인 상관의 영향력이 그렇게 만든 것을 알았다. 상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였고 나는 그림자의 그림자였다. 장관들의 입각 명단의 작성을 보조해 본 적도 있다.

인품과 경력보다는 충성심이나 정치적 거래나 논공행상에 의해 결정되는 수가 많았다. 카드에는 3명의 장관후보자 이름을 적게 되어 있었다. 1번이나 2번 중 한명이 점 찍히게 되어 있었다. 3번은 구색 맞추기였다. 3번까지 인물을 생각하기 귀찮은 것 같았다. 한번은 3번은 네가 알아서 적당한 인물을 써 넣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회 저명인사들 명단을 놓고 찾았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장관으로 추천해도 괜찮겠느냐고 먼저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가문의 영광이라도 되는 듯 황홀해 했다. 벼슬은 그런 마력을 지닌 것 같았다. 군 법무장교 때 병과장으로 모셨던 장군이 청와대에 와서 비참할 정도로 비굴하게 벼슬을 구걸하더라는 얘기를 민정수석비서관에게 들었다. 민정수석은 불쌍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한 자리를 주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 얼마 후 단골로 가던 한정식집에 갔을 때였다. 벼슬을 얻은 그 장군이 와서 위세가 당당하더라는 얘기를 마담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가 초라하게 벼슬 구걸을 하던 얘기가 겹쳐서 뇌리에 떠올랐다. 개에게라도 권력의 옷을 입히면 거기에 절을 하는 게 그 세계였다. 나는 권력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순간의 권력이지만 재벌은 그 앞에서 벌벌 떨었다. 가진 자는 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상관은 미련한 나에게 수시로 정치의 판세를 읽는 걸 가르쳤지만 나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 시간에 성경을 보고 문학을 하는 게 더 즐거웠다. 벼슬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우상인 대통령도 역시 권력욕과 재물욕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라는 걸 보았다. 쨍쨍한 햇빛이 비치던 인생의 여름이던 그때 그분은 내게 “앞으로 어떻게 할래?”라고 물으셨다. 나는 자리를 구걸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매일 읽는 성경 속의 예수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자기를 모델로 하라고 했다. 그동안 인간적으로 쌓은 인연과 수고한 게 얼마나 되는데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때 어떤 영적인 존재가 나에게로 들어왔다. 그 존재는 내가 모든 걸 버리고 가장 낮은 밑바닥으로 가게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사표를 내고 뒷골목의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렸다.

그 존재는 내가 이름 없는 변호사가 되어 어두운 감옥에 있는 죄인들을 무료로 변호하라고 했다. 30년이 거의 다 흐른 지금 나를 움직였던 그 존재는 성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내가 그때 일하면서도 열심히 읽었던 복음은 참으로 완전한 것 같다. 꿈꾸는 이상이 아니다. 나의 목표와 거기에 도달할 길과 힘을 동시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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