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고 모르는 건 무한이다”

“경전을 오랜 세월 보고 책을 읽어도 아는 게 없다. 진리의 넓은 바닷가에 서서 나는 모래알 한 알 정도를 주워들고 고개를 갸웃하는 소년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고 모르는 것은 무한이다. 선인들이 놓은 다리를 건너서 가고 그들이 걸어놓은 지혜의 등불 밑을 더듬거리며 걷고 있다. 나의 무지함을 고백하고 그분께 나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당신의 완전한 지혜로 이끌어달라고 한다.(본문 가운데)

40대쯤으로 보이는 10명 가량의 여성들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자기네들이 신처럼 모시는 분이 구속을 당하고 재판에 회부됐으니 변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건의 대충 내용을 알아보았다. 기소된 중년 여성은 서울 근교의 기도원에서 묵으면서 밤이고 낮이고 기도를 해왔다고 했다. 그녀는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수십명으로 늘어났다.

기도원측은 그녀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녀는 마침내 기도원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그런데도 그녀는 밤이면 다시 자기가 있던 기도원에 다시 들어와 사람들을 가르쳤다. 기도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그녀의 추종자 사이에 시비가 일고 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나는 구치소로 가서 구속된 그 여성을 만나보았다. 처음 보는 그녀의 눈길은 마치 정신의 높은 단계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한 표정이 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기도원 안에서 그분을 만났어요. 그리고 절대적 진리를 얻었죠. 이제는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한다고 해도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아요. 나는 더 이상 남의 말을 듣지 않아요. 내가 받은 하늘의 비밀이 우주의 진리니까. 세상은 내가 받은 진리를 따라야 해요. 나는 세상의 제재는 어떤 형태라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나는 절대적 자유를 받았으니까. 세상이 나를 이렇게 감옥에 넣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확대되어 보였다. 홍채 주위의 바퀴살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 전체가 곰 인형의 눈처럼 새까맸다.

생각해 보면 귀신이 들렸다는 무당들 눈이 그 비슷했다. 그걸 독특한 광기라고 해야 할지 신기(神氣)라고 해야할지 나는 구별할 능력이 없다. 나의 경험으로는 어쨌든 다른 눈빛을 한 특이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부터 변호사한테 내가 받은 하늘의 비밀을 알려줄 테니까 절대로 그 비밀을 다른 데 누설해선 안돼요. 알았죠?”

그녀의 태도는 마치 내게 특별한 혜택을 주려는 여왕이나 예언자 같았다. 다짐까지 받으려고 하는 그녀를 보니까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앞으로 무슨 엉뚱한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을 맺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그 비밀이라는 걸 내게 알려주지 마세요. 나는 비밀을 지킬 능력이 안 돼요. 알면 바로 세상에 폭로하게 될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구치소를 나왔다. 세상에는 그렇게 미친(?) 사람들이 많았다. 구치소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종교단체의 교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 교주는 산에서 기도하다가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신도들에게 자기가 성경 속에 나타난 이 땅에 다시 올 메시아 그 존재라고 했다. 진리는 자기로 인해 세상에 생기고 새 시대는 자기 때문에 열린다고 했다. 자신을 철저히 찬미하고 숭배해야 하고 자기를 따라서 살고 죽어도 자기를 따라서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를 확고히 믿는 것이 최상의 믿음이고 자기를 의심하는 것은 불신이라고 했다.

그의 워낙 강한 확신 탓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는 자신을 신이라고 했다. 코로나같이 그런 사람들의 광기도 빨리 넓게 번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단번에 하늘의 비밀이나 진리를 알게 됐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아주 둔한 것 같다. 매일 조금씩 진리를 배운다. 경전을 오랜 세월 보고 책을 읽어도 아는 게 없다. 진리의 넓은 바닷가에 서서 나는 모래알 한 알 정도를 주워들고 고개를 갸웃하는 소년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고 모르는 것은 무한이다. 선인들이 놓은 다리를 건너서 가고 그들이 걸어놓은 지혜의 등불 밑을 더듬거리며 걷고 있다. 나의 무지함을 고백하고 그분께 나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당신의 완전한 지혜로 이끌어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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