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⑥] 먹는 물에 독이 들어간다면

“여의도의 63빌딩이 폭파되어 갑자기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면 그 파급효과가 어떻겠습니까? 그런 게 테러입니다. 테러는 우리 국민들을 위축시키고 방위력을 약화시킵니다. 그런 정보를 사전에 수집하고 극도의 혼란이 발생했을 때 그 배경을 알아내 원인을 차단하고 사회를 지키는 게 우리 정보요원들의 임무일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그 후 미국에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9.11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이상 본문 가운데)

나는 계단식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서 정보요원들에게 예언같은 말을 하는 교관의 얘기들을 듣고 있었다. 대테러에 대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세균전의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학자 몇명이 연구소에서 변종 바이러스 하나를 만드는 건 경비가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세계가 곧 마비될 겁니다. 예전 일본은 페스트균을 만들어 중국의 한 지역에 뿌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런 테러 행위는 전쟁보다 더 무서울 것입니다. 세균전은 누가했는지 공격시기가 언제인지 불분명하면서 대량 살상 효과가 있고 세상을 마비시킬 수 있을 겁니다.”

40년 가까이 흐른 그 당시 나는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발생하는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다른 느낌이 들었다. 교관은 당시 또 이런 말도 했다.

“여의도의 63빌딩이 폭파되어 갑자기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면 그 파급효과가 어떻겠습니까? 그런 게 테러입니다. 정치적 상징 효과가 크죠. 그런 테러는 우리 국민들을 위축시키고 방위력을 약화시킵니다. 그런 정보를 사전에 수집하고 극도의 혼란이 발생했을 때 그 배경을 알아내 원인을 차단하고 사회를 지키는 게 우리 정보요원들의 임무일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그 후 미국에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9.11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이런 말도 했다.

“어느 날 서울시민이 먹는 수원지 물에 독극물이 투여됐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그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 이 사회는 바로 아수라장이 될 겁니다. 테러 전술에서 많이 사용되는 독극물이 있습니다. 소련은 캄보디아 라오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이코톡신이라는 독소를 사용했습니다. 곰팡이류에서 채취한 건데 사람이나 동물에게 급성중독을 일으키죠. 그 종류에는 푸사리움이나 아플라톡신이라는 물질도 있습니다. 북한 공작원이 가지고 와서 우리의 수원지에 몰래 던지려고 했던 물질입니다. 사회의 동요가 있을까봐 언론보도를 금지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고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테러는 정치적 암살입니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이라는 인물이 육영수 여사를 죽였습니다. 그때 국민들의 심리적 충격이 얼마나 컸습니까? 버마의 아웅산에서 대통령과 수행한 장관들에 대한 대형 테러사건이 있었습니다. 장관들과 수행원들이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당시 국내 지휘부는 공황 상태였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 조직은 치밀하게 움직였습니다. 관계기관을 지휘하는 사령탑이 되어 즉각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우리는 북한 소행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렇지만 테러가 일어난 장소는 버마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버마 정부의 조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현지에 파견된 정보요원의 보고가 날아왔습니다. 버마는 오랫동안 영국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뭘 주장해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부에서 보관하고 있던, 북한이 테러행위를 할 때 사용하는 폭약이나 권총등의 자료를 급히 현지에 보내 사건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들과 비교하게 해서 북한측 소행인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외로 빠져 나가려는 북한 공작원을 체포하게 하고 수사가 급속도로 진전하게 한 것입니다. 테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조직은 사전에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특히 중요한 것은 관계기관을 유기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시스템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나중에 정보기관은 북한의 지도자를 응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가 마지막 순간 실패한 적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런 비유를 들어 정보의 기본 개념을 설명했다.

“빌딩에 불이 났다고 생각해 봅시다. 불을 끄는 소방서는 그 빌딩이 어떤 구조인지 어떤 사무실이 들어와 있는지 그 안에 인화물질이 있는지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으면 대형화재를 막을 수도 있고 또 불이 나도 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각 분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정치, 학원, 노동 분야에 침투한 암 같은 존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첨단기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 분야의 정보를 수집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임무인 보안정보의 개본개념일 것입니다. 국회나 언론은 우리의 정보수집을 비난합니다. 우리 정보요원들은 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지 그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정보의 개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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