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⑨] 북파공작원의 영혼을 위하여

“나는 ‘실미도’라는 영화를 통해 그런 특수부대원들의 존재와 훈련과정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영화에 나오는 특수부대의 대장을 상징하는 현존 인물을 만난 것이다. 사람들은 남북관계 얘기가 나오면 북을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들 누군가 어떻게 해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음지에서 목숨을 내놓고 이 사회를 지키는 존재들이 있었다.” 사진은 실미도 사건 당시 촬영한 것이다. 

나는 장교로 최전방 눈 덮인 휴전선을 밤새 순찰을 돌기도 했다. 군 정보부대에서 특수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힘든 상황을 공감하고 싶었다. 깊은 산속의 지하의 칠흑같이 깜깜한 동굴 속을 통과하던 과정이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만 움직이는 훈련이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마찬가지인 농밀한 암흑이었다.

동굴 속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들렸다. 물 위에 통나무가 떠 있었다. 그 통나무를 감지하고 타고 건너야 했다.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이 동굴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철조망 중간쯤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그걸 찾은 후 뚫고 나가야 했다. 낡은 관 조각이 널려있는 곳이 있었고 주변에 오래된 뼈들이 흩어져 있기도 했다. 무덤 옆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그 동굴을 상처 없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빠져나오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졌다.

나중에 특수부대에서 오랜 세월을 지낸 한 장교와 만났다. 그는 철책선을 넘어 북으로 여러 번 갔다 왔다고 했다. 그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특수부대에 30년 가깝게 근무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것도 운명입니다. 제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귀국했을 때였어요. 명령서가 내려왔는데 특수부대로 가라는 내용이었죠. 그 부대를 찾아갔는데 한남동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개인 건물이더라구요. 입구에 검은 철모를 쓴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죠. 안으로 들어갔더니 군인들이 전부 사복을 입은 채 근무하고 있었어요. 대통령 특명으로 만들어진 북파 공작부대라는 겁니다. 그곳의 대장이 나보고 서약서부터 쓰라고 했어요. 그 내용을 보니까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는 겁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죽었구나 싶었어요. 그렇지만 그 시절은 그걸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위에서 찍어서 내려왔는데 어떻게 그걸 거부합니까? 그렇게 북파부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북으로 가는 공작원을 철책선을 넘어 북한지역에 데리고 가고 또 그곳까지 마중을 나가서 데리고 오는 일이었어요. 더러 남북 양쪽 초소에 발각되기도 했어요. 그럴 땐 양쪽에서 기관총을 쏘고 포를 쏴대죠. 총탄으로 화막이 생기는 데 그 사이를 뚫고 나오다가 여러 사람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했죠. 저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공작원들이 왜 북으로 간 겁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광범위한 군사정보를 직접 구해오라고 하셨어요. 북한으로 가서 문서를 탈취해 오기도 하고 적을 잡아 오고 시설을 폭파하기도 했어요. 미국이 수백개의 군사위성을 띄워도 북의 핵발전소의 설계도를 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사람이 가서 훔쳐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또 대통령이 북한의 어떤 구체적인 사정들을 몰래 확인을 하려고 하시죠. 그럴 때 사람이 간 겁니다. 요즈음은 무인비행기를 보내서 촬영하면 훨씬 정밀하게 나오는데 예전에는 그랬어요.”

“어떤 사람들을 북파 부대원으로 차출했습니까?”

“처음에는 사형수나 무기수 중에서 자원하는 사람들을 받았어요. 형의 감면을 조건으로 한 거죠. 그 사람들로 구성된 부대의 능력이 대단했어요. 대북 응징조치는 물론이고 북한의 무장공비가 다대포 앞바다에 침투했을 때도 대단했죠. 당시 상부에서 공비들을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는 명령이 내렸어요. 교전을 하면 공비들이 다 죽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북파부대원 몇 명을 다대포로 투입시켰죠. 무기를 주지 않고 공비를 그냥 때려잡으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북파 부대원들이 무장공비에게 접근해 기절시켜서 생포한 거예요. 그걸 언론에 사실대로 보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부대의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는데요. 관할 부대에서 잡은 것으로 하고 모든 훈장이나 표창이 엉뚱한 데로 가버렸죠.”

영화 <실미도> 포스터

나는 ‘실미도’라는 영화를 통해 그런 특수부대원들의 존재와 훈련과정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영화에 나오는 특수부대의 대장을 상징하는 현존 인물을 만난 것이다. 사람들은 남북관계 얘기가 나오면 북을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들 누군가 어떻게 해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음지에서 목숨을 내놓고 이 사회를 지키는 존재들이 있었다.

수학여행 가다 바다에 빠진 여학생이나 시위하다 죽은 사람들조차 열사 대접을 받는다. 남북을 오고 가다 죽은 그들의 영혼은 이 세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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