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의 ‘정보기관을 위한 변론’

옛 중앙정보부. 흔히 ‘남산’으로도 불렸다

1979년 12월, 수도군단 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군사반란이 있었다. 44년 전 일이다. 반란군인 공수부대가 군단사령부 작전 지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걸 묵인하면 반란에 동조한 것이 되고 막으면 교전상태에 돌입하는 순간이었다.

사령관은 자리에 없었다. 초급장교로 반란군이냐, 정부군이냐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우리 부대는 반란군이 됐다. 예하 사단의 연대가 여의도의 방송국을 점령하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상부에서 반란군 소속 장교들에게 국난극복 기장이 내려왔다. 내 자의는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

재야운동가로 빈민운동을 하던 고교동기가 있었다. 군사정권에 예리한 각을 세우며 투쟁하던 친구였다. 반란 당시 그는 전방부대의 소대장으로 복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갑자기 출동명령을 받고 서울로 들어와 중앙청을 점령했다. 그 안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방의 바깥 복도에서 무장을 하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이 그를 보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중앙청 구내에 설치되어 있는 공중전화로 가서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전화를 받은 친구는 군사반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군사반란의 첨병 부대장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 시절 고교 1년 선배인 판사가 있었다. 그는 서울법대와 사법고시에 수석을 한 수재였다. 그는 정국이 급하게 돌아가는 걸 느끼면서도 판사실에서 곗돈 이자 계산이나 하고 있는 자신의 역할을 한심하게 느꼈다고 했다. 내가 살던 시대 20대였던 우리가 경험했던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운명의 물결에 따라 흘렀다. 우리 세대만이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에는 아흔 살이 되는 고교선배 노인이 살고 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육군중위로 양구에서 전투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3년 동안 했던 병기장교의 좁은 기억만 있을 뿐 나이 90이 되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서야 당시의 전반적인 전쟁 상황에 대해 알게 됐다고 내게 말했다. 우리들은 일생 동안 별을 보지 못한 채 금고 안에서 우주여행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나는 이 세상의 본질적인 구조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는 개미 눈이었다. 법조문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었다. 눈앞의 작은 것들만 겨우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소수만이 독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끼워준 색안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그 창이 정보기관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대통령의 두뇌 역할을 하는 비서실 기능을 하는 조직이었다. 재벌들과, 광고가 영향력을 미치는 자본주의 언론을 통해서는 다 볼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보기관과 대통령의 비선조직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는 거기서 그동안 금기시되어 있던 사상 서적들을 읽었다. 주체사상을 읽고 김일성 선집을 읽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인 북한의 소설들을 읽었다. 북한의 실체를 구경하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반공교육이 사람을 외눈박이로 만드는 정신적 전족이라는 걸 알았다. 현미경 같은 눈으로 본 법조문이 세상이라고 알던 내가 정치권력과 그들이 전개하는 쑈 같은 공연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막 뒤에서 분장을 하고 국민을 현혹시키는 지도자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마주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일찍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체험을 한 셈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민초인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막연하지만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면서 내 삶에 영향을 주었다.

할 말 하면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려면 불륜을 저지르지 말고 정직한 노동으로 밥을 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먼지 날리고 흙탕물 번지는 정치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잘 판단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한 계급이, 한 인물이, 한 기관이 시대의 악으로 간주된 적이 있다. 그 중 정보기관에 대한 변론을 한번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악은 누구나 쉽게 본다. 그러나 선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 평생 변호사를 천직으로 해 왔다. 변호사란 악(惡) 속에서 선을 찾는 직업이었다.

이제부터 더러 정보기관의 변론을 해 봐야겠다. 그리고 커튼이 열린 정보기관이란 창을 통해 본 세상과 그 의미를 기회 있을 때마다 써보려고 한다. 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구조와 이념적 지향이라고 할까.

정보기관의 비밀을 폭로하거나 권력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위조로 쓰려는 게 아니다. 읽는 분들이 깊은 통찰로 행간의 의미를 봐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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