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980년 8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정보기관의 조직원 자격을 얻은 것은 적나라한 역사의 본질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수사와 군사재판에 관여한 사람들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될 예정이었다. 어느 날 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청문회 답변을 위해 육군본부 법무감실에 그 사건에 참여했던 보안사령부 출신 장군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법무병과의 장군들이 모일 거요. 야당 질문에 대해 그 사건의 담당자로 답변자료를 만들기 위한 팀이지. 당신은 그곳으로 가서 팀의 준비상황을 지켜보고 그 상황을 보고서로 작성해 제출하시오.”

그 말을 듣고 나는 난처했다. 그 5년 전만 해도 나는 법무장교로 법무감실 소속이었다. 김대중내란 음모사건의 수사는 선배 법무장교들이 담당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장군이 되거나 아직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감시자라는 껄끄럽고 불편한 감정을 줄 수 있었다.

“그 분들중 제가 군 생활시 선배들이 있는데 부담스럽습니다.”
내가 입장을 말했다.

“무슨 소리요? 당신이 법무장교 출신이기 때문에 더 그곳으로 보내는 거요. 당시 수사상황을 더 정확히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보내는 거요. 관련된 장교들과 인연도 있고 말이요. 그리고 당신은 더 이상 그들의 하급자가 아니요. 안전기획부에서 다른 기관으로 가면 그 사람은 바로 안전기획부장을 대리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사명을 수행하는 거요.”

“저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전혀 모르는데요.”
내가 다시 말했다.

“그건 걱정할 게 없소. 안전기획부에서 김대중을 직접 조사했던 수사관이 가서 그들과 함께 청문회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자료를 만들 거요. 나이도 지긋하고 경험도 풍부한 인물이요. 그 수사관이 실무는 다 알아서 할 거요. 당신은 그 수사관과는 별개로 그 팀의 토의상황이나 개인들의 시국관 동향들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거요. 이 조직에서는 명령을 받으면 수행하는 거요. 그렇게 아시오.”

나는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만든 권력 내부의 적나라한 실체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임자는 내가 미덥지 못했는지 이런 주의를 주었다.

“안전기획부 요원이 다른 기관을 장악하는 방법은 돈이요. 내가 충분한 특별활동비를 줄 테니까 과감히 돈을 써보시오. 다른 기관들은 그 돈에서 우선 기가 질릴 거요. 그 다음은 당신의 개인적 역량이요.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위압적인 권위주의 자세는 금물이요. 겸손한 인격으로 할 수도 있고 전문적 지식으로 그들을 승복시킬 수도 있겠지. 하여튼 지식은 많고 행동은 겸손한 신사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요. 권위는 바로 거기서 나오는 거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조사 당시 그 사건을 담당했던 보안사 담당장교나 법무장교들은 대부분 장군으로 승진했고 제대해서 현역 중견 검사가 되어있기도 하오.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고 말이요. 그 팀을 우리가 뒤에서 컨트롤 해도 형식적 대표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서 군 검찰관을 했던 정 장군이 맡아서 할 거요. 그 사람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공헌을 한 사람이요. 그래서 장군이 됐고 지금 정권의 생각으로 이번 일을 잘 하면 장관 자리는 곤란하지만 병무청장이나 국회의원 공천 정도로 보상을 생각하고 있소.”

그런 사건의 이면에는 담당자들에게 철저한 논공행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수사국 책임자는 명령을 하고 난 후 60대쯤의 늙은 수사관을 소개했다. 기골이 장대한 남자였다. 그는 정보기관의 전설로 통하고 있었다. 5.16군사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김종필부터 시작해서 그에게 조사받고 혼이 나지 않은 정치인은 거의 없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가 단독으로 조사해서 결론을 지었다고 했다. 그를 본 적이 있었다. 장교용 졈퍼를 입고 항상 혼자 침묵하고 있는 바위 같은 남자였다.

그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치는 책상 앞에 앉아 돌부처처럼 가만히 않아 있었다. 펜을 들고 한 줄 쓰고 또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보고서에 쓸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밤새도록 고민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조사를 할 때면 집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고 했다. 조사하다가 피곤하면 조사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다시 신문을 계속한다고 했다.

그는 자유당정권 시절 특무대부터 시작해서 중앙정보부의 지하 조사실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와 친해진다면 숨겨진 역사와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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