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칠순기념 여행, 닷사이 술잔을 부딪치며

사진 엄상익 변호사

여섯쌍의 친구부부와 함께 칠순기념 여행을 하고 있다. 일본의 시골인 야마구치현 하기시의 온천장에 와 있다. 중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여섯명의 친구다. 50년 이상 곰삭은 우정을 가진 친구와 노년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겹치는 즐거움이 아닐까. 우리들은 모두 마음 바닥을 다 드러내는 사이다. 온천장의 다다미방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모처럼 함께하는 여행이고 우리 나이에 언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지 모르는데 술이 빠질 수 없지. ‘닷사이’ 정종 한병에 얼마죠?”

재벌그룹 계열사의 사장을 지낸 친구가 호기롭게 물었다. 방의 구석 탁자 위에는 여러 종류의 술병이 진열되어 있었다. 사장을 지낸 친구가 닷사이 한 병에 육천엔 하는 걸 보고 순간 멈칫하는 표정이었다.

“접대를 하거나 받을 때는 부담 없었는데 내 돈으로 육천엔을 내고 사먹기는 좀 그렇다.”

그가 주저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멈칫하는 분위기였다. 전부들 검약하면서 살아온 인생이다.

“쓸 때는 써야지 우리한테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어. 비싸더라도 한 병 사서 먹자. 열두명에게 한잔씩은 돌아갈 거야.”

한 친구가 용기를 내서 술을 주문했다. 잠시 후 작은 유리잔들이 앞에 놓이고 그 안에 맑고 투명한 술이 부어졌다.

나는 술 한병에 그렇게 두세 번 다시 생각해야 할까 하고 우리 일행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중고등학교 동기였다. 그중 두 명은 기업에서 사장까지 갔으면 성공한 셈이다. 나머지 네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 암자나 도서실에서 고시공부를 같이 했었다.

제일 먼저 행정고시에 붙은 친구는 장관을 끝으로 관료생활을 마쳤다. 두명은 부장판사를 하고 법원을 나왔다. 그리고 변호사인 나였다. 한병에 육천엔 하는 정종을 사기 주저하면 모두가 청렴하고 소박하게 살아왔다는 증거 아닐까. 장관을 지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부산에 근무하다가 서울로 올라왔을 때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은 2300만원이 전재산이었어. 그걸로 도저히 집을 구할 수 없는 거야. 그때 아는 사람이 목동아파트 분양을 하는데 그걸 받으라고 권했어. 부동산 전문인 친구는 그 지역이 침수되니까 사지 말라고 했어. 살 곳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은행융자 받아서 그 아파트를 샀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집을 가지지 못했을 거야.”

장관 청문회때 보면 그 친구는 재산이 없었다. 다음으로 대기업 사장을 지낸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사장을 하고 회사에서 나왔는데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야. 회사에 좀더 남아 버티지도 못했어. 회사 안에도 여러 계열이 있어. 회장계열이 있고 그룹의 결정권이 회장 사모님에게 간 경우 그 계열이 있어. 그러다가 회장의 아들에게 중심축이 옮겨졌지. 또 그 아들의 계열이 있지. 회사 힘의 중심이 바뀔 때 잘 갈아타야 하는데 나는 그걸 못했어.”

부장판사를 한 친구도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법원으로 출근하는데 자신이 돈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변호사 개업을 결심했다고 내게 말했었다. 겉 포장은 그런 대로 괜찮아 보이는 친구들은 경제면에서는 빵점인 것 같았다.

“닷사이 한잔 마시면서 칠십 고개를 함께 넘는데 산을 내려가면서 밤이 오기 전 황혼을 어떻게 즐길 거야?”

내가 노인이 된 친구들에게 물었다. 대기업 사장을 지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평생 태극권을 했는데 기에 대해 어떤 결론을 맺을거야.”

법관을 지낸 친구 한명은 이런 말을 했다.

“10년전부터 오카리나를 가지고 버스킹 연주을 해왔어. 좀더 완숙한 경지로 가고 싶어.”

법관을 지낸 다른 한명은 이런 말을 했다.

“도시락을 쪽방촌에 배달했어. 앞으로는 변호사로 공익소송을 하고 싶어.”

장관을 지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내와 지금 성악을 공부하고 있어. 남은 시간 삶의 여백을 가지고 싶어.”

인생 전반기 우리는 무엇인가 되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그 무엇인가가 끝이 나고 모두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인생 후반기는 나름대로 여백을 가지고 즐겁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닷사이 술잔을 부딪치며 칠십고개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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