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많은 돈 갖고도 쓸 줄 모르는 ‘가난한 부자들’

“노인은 자기의 대여금고에 혼자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며 몹시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노인은 대여금고 안에서 수십개 통장이 묶여 있는 다발을 꺼내 그 중 하나를 찾고 있었다. 금세 쓰러질 같이 자세가 위태로웠다. 건강이 이미 끝났는데도 그래서 쓸 능력이 없는데도 그 돈이 그렇게 소중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본문에서) 사진은 은행 대여금고

내가 묵는 실버타운에서 안타까운 모습을 봤다.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부자 노인의 혼자 살아가는 모습이다. 실버타운은 사실상 아파트에 혼자 사는 것과 비슷하다. 공동식당과 같이 쓰는 부대시설이 있을 뿐이다.

노인들끼리 소통하지 않는다. 밥도 따로 먹는다. 실버타운을 버스터미널로 비유하기도 한다. 우연히 스치는 여행객 정도의 관계라는 것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채 혼자 산다는 그 부자 노인은 거의 걷지를 못한다. 지팡이를 집고 한걸음이 5cm 정도나 될까. 그런 걸음으로 노인이 혼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엄청난 작업일 것이다.

오래 전에 이혼했다고 한다.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돈이 있는 탓인지 경계심이 강하다고 했다. 청소를 시키고 작은 돈을 줄 때도 엄청나게 살핀다고 했다. 두 번이나 그 노인이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쓰러져 있는 사실이 발견됐다.

실버타운은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노인들이 묵는 곳이다. 아픈 노인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혼자 사는 노인은 완강하게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실버타운에서 그 노인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변호사인 내게 문의를 했다.

돈이 있어도 참 딱한 경우였다. 그가 가진 돈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다. 노인은 요양원을 알아보고 계약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노인을 대리해서 일을 해 줄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노인은 통장을 움켜쥔 채 누구도 믿지 않는 것 같다. 어제는 그 노인이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골프채를 어깨에 둘러메고 지팡이를 짚고 “하나 둘 하나 둘”하면서 아스팔트 위를 걷는 걸 봤다. 보폭이 2~3cm도 안 돼 보였다. 실버타운 정원의 간이 골프장까지 가는 길이 그 노인에게는 엄청나게 먼 길일 것이다. 그래도 제자리 같은 걸음으로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옆으로 가서 “도와드릴까요?” 하고 말했다.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에 볼이 움푹 들어간 그 노인은 “괜찮아요” 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부자 노인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서초동의 은행 대여금고에서 우연히 본 광경이다. 걷지 못하는 병든 노인이 다른 사람에게 부축 받아 왔다. 노인은 자기의 대여금고에 혼자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며 몹시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노인은 대여금고 안에서 수십개 통장이 묶여 있는 다발을 꺼내 그 중 하나를 찾고 있었다. 금세 쓰러질 같이 자세가 위태로웠다. 건강이 이미 끝났는데도 그래서 쓸 능력이 없는데도 그 돈이 그렇게 소중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돈에 집착하는 그 노인은 행복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왜 죽을 때까지 돈을 움켜쥘 줄만 알고 쓰지는 못하는 것일까. 돈을 쓰려고 버는 게 아닐까. 그리고 쓴 만큼만 제 돈이 아닐까. 사람들은 돈을 쓰는 걸 미처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나이를 먹었어도 돈을 쓰는데 아이 같은 노인도 봤다. 젊어서부터 팔십까지 연구만 해 온 순진한 노인이었다. 마음도 따뜻한 것 같았다. 그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은행에서 재무관리를 해주는 직원이 내가 돈이 너무 많다고 해요.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해 보래요.”

흔히들 재산을 주식과 부동산 현금으로 나누어 보존하고 증식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황혼이 짙은 그 노인은 번 돈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그 노인은 자식도 없다고 했다.

“그 돈을 마지막 1원까지 다 쓰시고 가지 그러세요?”
“어디다 써요?”

노인이 물었다.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평생 고생하고 돈을 버셨으니 이제 크루즈여행 같은 것도 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데 먼저 쓰셔야 하지 않을까요?”
“여행할 필요가 있을까요? 텔레비전 여행프로를 보면 거기 다 나와 있잖아요?”

삶의 여백을 모르는 노인 같았다.

“텔레비젼 여행프로에서 보여주는 풍경에서 바람이 느껴지던가요? 바다냄새가 납니까? 현지에서 느끼는 감동이 전해집니까? 여행이라는 건 돈이 없어서 그렇지 사람들이 다 해보고 싶은 로망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닐까요?”

“배를 타면 멀미가 나잖아요?”
“타보셨어요?”
“아니요”
“배가 커서 멀미 나지 않아요. 혹시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주사 한대 맞으면 괜찮아요.”

노인은 알듯 모를듯 표정이었다. 내가 덧붙였다.

“혹시 마음이 있으시면 힘든 사람에게 기부하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기부는 왜 해요?”
“베풀고 나누는 게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기부를 받는 단체를 믿지 못하겠으면 직접 주위에 돈을 쓰셔도 괜찮을 겁니다.”

통장에 돈이 있어도 그냥 숫자일 뿐 아무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들은 통장에 돈을 가지고 있어도 쓸 줄 모르는 가난한 사람 같았다. 그들이 쪽방에 살면서 폐지를 줍고 동전 하나를 얻기 위해 교회 앞에 줄을 서는 극빈층 노인들과 다른 게 뭘까. 통장 속에 있는 관념적인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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