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명문대 교수 넘어뜨린 ‘악마의 미끼’

“그날 저녁 대학입시 시험관인 교수들이 담합한 조직적인 대학 입시부정이 전국에 보도되었다. 수갑을 찬 그녀가 검은 차를 타고 구치소로 가는 모습이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억울하다고 울부짖었다.(중략) 그녀는 어려서부터 무용을 하면서 꿈을 키워왔던 재능있는 소녀가 좌절의 진한 눈물을 흘리는 걸 알고 있을까.”(본문 가운데)

명문대 무용과 교수였던 그녀는 그 계통의 권력이었다. 대학입시 실기시험의 심사위원장이었고 예술단 단장으로 수 많은 무용수들 중 누구를 프리마돈나로 무대 중앙에 세우나 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행복을 다 거머쥔 것 같았다.

성실하게 외조를 해주는 고급 공무원인 남편은 장관이 멀지 않았다. 아이들도 탈없이 자라주었다. 그녀의 꿈은 서울에서 세계적인 무대를 펼쳐보이는 것이었다. 무대장치도 러시아의 화려한 무대를 그대로 옮겨다 재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공연에 드는 비용의 몇십배 돈이 필요했다.

어느 날 그녀는 공연무대가 끝난 후 열린 파티에서 사업가라고 하는 커리어 우먼을 만났다. 꽤나 부유해 보이는 그 중년의 여성은 예술세계에 대해 관심과 깊은 이해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여성은 매월 후원금을 내겠다고 선뜻 약속했다. 작지 않은 액수였다. 고마웠다. 예술단을 이끌어 가려면 후원자들을 이따금씩 만나서 감사의 인사를 표시하며 관리를 해야 했다.

많은 돈을 후원하는 사업가라는 그 여성은 만날 때마다 좋은 옷이나 녹용을 선물하기도 했다. 사양했지만 그 여성은 예술인의 후원은 보람있는 돈을 쓰는 것이라면서 오히려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그 여성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대학입시가 몇 개월 남았을 때였다. 후원을 해왔던 그 여성이 학부모를 데리고 와 한 학생의 무용 레슨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 여성은 자신이 입시학원장이라고 했다.

“저는 교수입니다. 명예를 돈과 바꿀 수 없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레슨을 거절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때때로 한 번씩 봐달라는 겁니다. 그 정도도 안 되겠습니까?” 마음이 흔들렸다. 그동안의 정을 생각하면 들어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학부모가 간절히 매달렸다.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킬 테니까 아이 실력이 어떻게 되는지 한주에 한 시간만 봐주세요.”

교수인 그녀는 그들의 간곡한 부탁에 지고 말았다. 학부모는 매달 레슨비 조로 돈을 보냈다. 고액이었다.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그 돈만큼 열심히 가르치면 괜찮을 거야 하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입시가 얼마남지 않았을 때였다.

후원을 하는 학원장이 사과 상자를 선물로 보내왔다. 상자를 뜯어보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자 안이 돈뭉치로 꽉 차 있었다. 학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

“이게 무슨 돈이죠?”
“그 아이의 부모가 후원금을 내놓은 겁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돈을 받아서 하고 싶었던 공연을 하는데 쓰면 된다. 후원금이라면 법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심사위원장인 그녀는 실기시험 때 레슨을 한 그 아이를 어떻게든 합격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손에 땀이 났다.

그 학생은 합격했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잘 돌아갔다.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검찰청에서 소환장이 날아왔다. 그녀가 검사실에 들어갔을 때 학원장이라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검사는 그 옆의 접이식 철의자에 심사위원장이었던 그녀를 앉혔다.

“부정입학 뇌물로 2억원을 받으셨죠?” 검사가 물었다.

“아니예요, 후원금으로 받은 거예요.” 그녀는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는 것 같았다. 검사가 그녀 옆의 학원장인 여성을 보고 물었다.

“후원금이라고 하는데 맞아요?”
“아니죠. 다른 심사위원과 나누어 먹으라고 준 돈이었어요. 그런데 이 여자가 혼자 다 먹었어요.”

그녀는 기가 막히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녀가 학원장에게 말했다. “후원금이라고 그랬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소리지 세상에 돈 안들이고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비밀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검사님이 뇌물을 먹은 교수 한 사람만 확실히 불면 봐주겠다고 해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미안해요. 교수님도 얼른 한 사람 부세요.”

그날 저녁 대학입시 시험관인 교수들이 담합한 조직적인 대학 입시부정이 전국에 보도되었다. 수갑을 찬 그녀가 검은 차를 타고 구치소로 가는 모습이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억울하다고 울부짖었다. 악마의 낚시미끼에 걸려 땅바닥에서 아가미를 벌떡거리며 마지막 숨을 쉬는 물고기 같은 그녀가 안타까워 보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무용을 하면서 꿈을 키워왔던 재능있는 소녀가 좌절의 진한 눈물을 흘리는 걸 알고 있을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