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벌거벗은 성자
종교적인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조금은 슬픈 눈을 가진 그리고 얼굴에 미묘한 푸른 그림자를 드리운 그녀가 그랬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근처의 법당에 자주 들렸다고 했다. 향냄새가 좋았다. 막연히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있는 게 좋았다.
가난한 집 딸인 그녀는 중학교를 다니다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공장에 들어간 오빠도 그랬다. 공허한 마음에 어딘가 그들의 마음을 잡아줄 존재를 그리워했다. 그 무렵 오빠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정말 믿고 따를 만한 의인이 있어. 그분의 말씀을 한번 들어봐라. 정말 감동을 받을거야.”
오빠가 의인이라고 한 사람은 산속에서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혼자 살아온 도인 같은 분이었다. 머리를 빡빡 깎고 남루한 옷에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성자였다.
그 성자는 이따금씩 세상으로 내려와 깨달은 진리를 전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순간이면 겨울의 함박눈 같이 마음에 평화가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다른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도 비슷한 것 같았다. 밤늦은 시간까지 성자의 말을 듣고 보리밥 한 덩어리를 얻어먹어도 행복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성자는 그때그때 이 교회 저 교회 장소를 빌려 설교했다. 그의 말을 듣기 위해 1천명이 모이고 2천명이 모였다. 하루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군중 속의 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잠시후 성자가 나체가 된 여자를 보고 말했다.
“옷을 입으십시오”
“저는 워낙 더러운 여자입니다.”
그 여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성자가 자기도 옷을 벗었다. 나체가 된 그는 그녀에게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다시 옷을 입었다. 죄가 많다는 그 여성의 자리까지 내려가 주는 행동이었다. 그 장소에 감동이 출렁거렸다. 성자가 모인 군중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고물장사나 엿장사 같은 남이 하기 싫어하는 직업들을 자청해서 해야 합니다. 춥고 힘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해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맑은 샘물이 되어 사람들의 영혼을 적셨다. 성자의 진리가 집회 때마다 이어졌다.
“저는 이제부터 인간이 만든 율법에 매이지 않고 정말 자유할 것입니다. 술을 먹어야 하는 자리도 가리지 않고 가겠습니다. 창녀가 있는 자리라도 오해를 무릅쓰고 가겠습니다. 집안이 가난하고 환경이 나빠서 창녀가 된 사람들이 왜 더럽습니까? 왜 그들을 구별하고 더럽다고 해야 합니까? 진정한 믿음은 그들을 찾아가는 겁니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기성교회가 여러분에게 심어준 것은 다 율법입니다.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입니다. 거기 얽매이면 안됩니다.”
교계에서 흉흉한 소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성자가 사이비 이단의 교주라는 말이 돌았다. 성자가 머리를 깎고 있다고 해서 ‘빡빡교’라고도 불렀다. 기독교 교단에서 그를 조사하기 위해 목사들이 파견됐다. 그는 목사들에게 강하게 저항했다. 목사들은 그를 폭행죄로 고소했고 그 성자가 감옥으로 가면서 더 이상 집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엉뚱한 가짜 지도자가 나와 그들의 여왕이 됐다. 그 성자를 마음 속에 모셨었던 여공이 먼 훗날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와 사이비 여왕을 고발하던 얘기 중에 나는 사라진 성자의 존재를 발견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악마는 성자가 구름 위에서 떨어져 진흙탕에서 뒹구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다.
그 여성의 얘기를 들으면서 머리 속 스크린에 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온 청년 예수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홍등가의 유리장 안에 앉아있는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갔다. 막달라 마리아가 당황해서 소리친다.
“예수님 이런 데 오시면 안되요. 남들이 오해해요.”
청년 예수는 이미 많은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성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청년 예수가 빙긋이 웃으며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한다.
“그게 무슨 문제니?”
예수가 성매매를 했다고 언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대중들이 선동되어 댓글이라는 돌을 수없이 날린다. 검찰이 예수를 끌어다 조사하고 기소한다. 예수는 또다시 죄인의 십자가를 지는 운명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빡빡교의 교주로 불리던 그 사람에게 예수가 빙의되어 왔다 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