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숙제’ 같은 인생, ‘축제’로 바꾸었으면

“어둑어둑 해질 무렵 도서관에서 쪽방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입구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알 전구의 빛을 받은 사과들이 반짝거렸다. 주머니를 뒤졌더니 은색의 5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손에 쥐어졌다. 나는 돈이 없었다. 그걸로 사과 한 알을 사서 아내 손에 쥐어 주었다. 아내의 얼굴이 행복으로 환하게 피어 올랐다. 그게 행복이 아니었을까.” 


나는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아홉살 손자가 엉뚱한 데가 있다. 엄마아빠가 잠들어 있는 새벽 여섯시쯤 몰래 일어나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가 뭔가를 뒤지더라는 것이다. 엄마가 일어나 살펴보니까 숙제로 내 준 문제의 답안지를 찾더라는 것이다.

은밀한 범죄 시도가 미수에 그쳤다. 엄마는 그 다음부터 답지를 머리에 베고 잔다고 했다. 아내는 손자가 도대체 친가나 외가의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깊은 마음 속 오지에 달라붙었던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홉살 때 내가 그런 적이 있었다. 다음날 풀어야 할 문제의 답안지를 미리보고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비밀리에 연필 자국을 내 놓았다. 그러다 막상 문제를 풀 때 보니까 그 표시가 깜쪽 같이 없어져 있었다. 엄마가 그걸 알아채고 몰래 그 자국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엄마는 나를 다그치지 않고 팔베개를 해서 눕힌 후 ‘늑대와 소년’의 동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는 정직한 사람을 세상이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지만 숙제는 참 싫었다. 빨리 어른이 돼서 숙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을 사는 게 밀려오는 숙제를 풀어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소년 시절 여러 입시가 엄청 스트레스를 주는 숙제였다. 청년 시절 군대를 갔다와야 하고, 직업을 잡아야 할 숙제가 있었다. 장년 시절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게 큰 숙제였다. 아내는 내게 애들을 뻥 튀기 기계 속에 넣어서 단번에 크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담스런 숙제를 앞에 두고 나는 어릴 때 같이 답안지를 미리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노년의 숙제는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다가 천국으로 배웅하는 일이었다. 그럭저럭 그 일마저 끝내고 나서 거울을 보니까 그 속에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왠일일까. 가만히 보니까 아버지를 닮은 늙은 나였다. 아내를 보면 무서운 장모님을 다시 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이제는 마흔살을 넘긴 딸과 아들에게 내가 숙제가 된 것은 아닐까. 나는 인생을 숙제처럼 살았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나는 숙제 속에 간간이 축제를 넣으려고 나름대로 애썼다.

석탄 광산에 일거리를 얻으려고 가는 희랍인 조르바는 바닷가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순간순간이 축제여야 한다고 책 속에서 내게 말해 주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방울이었던 나는 소년에서 청춘의 강을 건너 노년의 바다 가까운 폭 넓은 강의 하류까지 흘러오면서 순간순간 화려한 꿈으로 암담한 현실을 색칠해 왔다.

깊은 산 속 퇴락한 절 뒷방에 고시 낭인으로 묵을 때였다. 나는 빗물로 얼룩진 천정의 도배지 무늬를 보면서 꿈을 꾸었다. 왕자가 잠시 거지로 전락해 있어도 언젠가 왕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영화 장면으로 나의 영혼을 촉촉하게 하기도 했다. 탤런트가 되어 드라마의 재벌회장 역을 맡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게 그 역을 맡은 순간은 자기가 진짜 회장이라고 했다. 많은 부하들을 앞에 놓고 있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끙끙거리며 무거운 숙제를 밀고 나갈 게 아니라 최면을 잘만 걸면 나는 축제 속에 있을 수 있었다. 노동을 착취와 저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자기 실현의 행복으로 보는 철학자 헤겔도 있는 것이다. 춘향이도 업고 놀면 축제지만, 그게 숙제가 되면 천근만근 되는 돌덩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혼 초 두평이 안되는 쪽방에 살아도 추리소설과, 아내와 함께라면 그곳은 나의 천국이었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 도서관에서 쪽방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입구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알 전구의 빛을 받은 사과들이 반짝거렸다. 주머니를 뒤졌더니 은색의 5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손에 쥐어졌다. 나는 돈이 없었다. 그걸로 사과 한 알을 사서 아내 손에 쥐어 주었다. 아내의 얼굴이 행복으로 환하게 피어 올랐다. 그게 행복이 아니었을까.

내가 거쳐온 모든 곳이 내게는 신성한 장소였고 거기서 행복의 꽃이 피어나고 생명나무가 자라났다. 사람들이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경험을 조심스럽게 하나 고백한다면 그분은 고통의 신경줄을 끊어주고 축제의 환희를 내게 선물로 보내 주셨다. 그 방법도 괜찮았다. 안 믿는 분에게는 괜한 헛소리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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