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묵호역 여직원이 바로 천사였음을…
묵호역은 아직도 오래된 시골 역의 모습이 남아있다. 뾰족한 기와지붕만 평평한 콘크리트로 바뀌었다고 할까. 사람들 발길에 닳은 콘크리트 바닥도 천천히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도 정겹다.
황혼 무렵 나는 서울에서 기차 타고 오는 아내를 마중하러 30분쯤 먼저 역사로 나왔다. 시간의 흐름이 느린 듯한 시골 역사의 정감을 맛보며 구석 의자에 앉아있기 위해서였다.
묵호역은 기차가 도착하고 출발하는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한적하고 적막했다. 구석의 창구 안에 여직원 한 명이 앉아있다.
갑자기 내 기억의 오지에 붙어 있던 단편소설 <사평역>의 장면이 살며시 피어오른다. 시골역의 늙은 역장이 손을 부비며 창가로 다가가 무심히 내려 쌓이는 함박눈을 보는 장면이다. 역사 안에는 톱밥 난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시골 역이라는 곳은 기다림과 설레임이 고여있는 곳은 아닐까.
나는 역사의 벽 아래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나의 기도수첩이다. 거기다 연필로 ‘시편 23장’을 반복해서 쓰는 게 나의 기도였다.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촌스러운 지방 도시 묵호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골목에는 아직도 40~50년 전의 공기가 고여있는 것 같다. 퇴락해 가는 집들이 납작납작 엎드려 있고 1960년대 보았던 양화점도 있고 빨간불이 반짝거리는 작부집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중소도시의 그 여유와 느긋한 편안함을 즐긴다.
수첩을 펼치다가 ‘아차’ 하고 순간 낭패감이 들었다. 수첩을 묶는 스프링 사이에 꽂혀 있어야 할 연필이 없는 것이다. 망설이다가 창구에 있는 여직원에게 갔다. 뿔테 안경을 쓴 순박해 보이는 30대 쯤의 여성이었다.
“연필 좀 잠깐 빌려줄 수 있어요?”
내가 부탁했다. 그 여직원은 책상 위에 있는 필통을 뒤적이더니 볼펜을 한 자루 창구로 내밀었다.
“아니 볼펜 말고 연필이면 좋겠는데—–”
“연필요? 그게 있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필통을 이리저리 한참 동안 뒤적여 본다. 그 성의가 고맙다. 이윽고 필통의 구석 바닥에 쳐박혀 있던 몽당연필 한 자루가 나왔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끝이 뭉툭했다.
“연필을 깎아드려야겠네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필통에서 작은 칼을 찾아들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손님이 창구 앞에 다가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야 연필깎는 거 정말 오랫만에 본다.”
나이가 대충 60은 넘은 남자 같았다. 어린 날의 연필에 대한 정서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직원이 그 남자에게 묻는다.
“내가 핸드폰 앱으로 기차표를 예약했는데 시간을 좀 바꿔주소. 내가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 몰라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 손님 연필 깎아 드리고요.”
여직원은 어느새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연필심을 돌아가면서 칼로 갈아 뾰족하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매끈하게 깎여진 연필을 받았다. 스피커에서 기차가 20분 연착된다는 방송이 나온다. 나는 조용한 역사 구석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며 기도문을 쓴다. 사각사각 시로 된 기도문을 쓰는 도중 그 분이 어떤 생각을 내게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보아라 하찮은 부탁이라도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베풀어주는 저 역사의 여직원 같은 좋은 사람이 천사 아니겠니?’
나는 반성한다. 그동안 내 시간만 소중히 여겨왔다. 기도하고 공부하고 책 읽는 나만의 스케쥴을 짜놓고 남이 그걸 방해하면 못마땅해했다. 손해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의 작은 지식과 노력을 조금 나누어주고는 생색을 냈다.
시간을 움켜쥐려고 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작으면 작은 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주위에 베풀어야 했다. 기도를 한번 못하면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위해 스케줄을 변경하는 건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닐까. 역사의 젊은 여직원에게 늙은 내가 많은 걸 배운 저녁이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