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노년의 행복, 맘 먹기 달렸습니다”

노부부의 행복한 시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실버타운은 인생의 썰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실습장 같다. 엊그제 같은 층에 있는 노부부 중 부인이 죽었다. 남편은 혼자가 됐다. 윗층의 그림 그리던 부인도 죽고 남편 혼자 남았다. 연기같이 물거품같이 스러지는 생명을 실감한다. 죽은 분이 그렸던 동양화가 실버타운의 벽에 쓸쓸하게 걸려있다.

인간은 누구나 결국에는 혼자가 되는 것 같다. 파킨슨병에 걸린 혼자 사는 노인이 있다. 몇번 혼자 쓰러져 있는 걸 직원들이 발견했다. 노인들은 요양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것 같다. 뼈만 앙상하게 남도록 목숨만 붙여놓는 그곳은 지옥이라는 인식이다. 주렁주렁 링거와 호흡줄을 달고 연명하는 중환자실도 무서워한다.

혼자 죽을 용기만 있다면 집에서 혼자 죽는 게 행복할 것 같다고 한다. 나와 친하던 소설가 정을병씨가 그 행복을 찾았다. 소설을 써서 번 돈으로 산 집에서 40여년을 살다가 마지막에 혼자가 된 그는 집에서 혼자 죽었다. 짐작컨대 혼자 음식을 끊고 죽음을 정면으로 맞이한 것 같다.

노년을 배우는 학습장에 있으면서 나이 먹은 분들의 걱정을 알게 됐다. 내남 없이 수입이 없이 점점 없어져 가는 돈 때문에 근심한다. 조병화 시인이 노년에 쓴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저승 갈 노잣돈이 거의 다 떨어졌는데 자기를 데리고 갈 저승사자가 때에 맞춰 오실 거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실버타운의 90대 노인으로부터 현실적인 답을 얘기들었다.

“노년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재정문제를 치밀하게 계산해 보고 준비했었죠. 아버지가 떠나신 나이를 생각하고 70대에 죽을 걸로 생각하고 자금계획을 세웠는데 80대를 훌쩍 넘긴 거야. 그래서 80대에 죽을 걸로 생각하고 마지막 1원까지 다 쓰고 가려고 했는데 90대를 넘겼어. 죽어지지가 않고 몸도 매일 골프를 칠 정도로 건강해. 어쩌면 진짜 100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돈 문제가 걱정이 되는 거야. 그래도 복지국가가 됐는데 한 푼 없다고 굶어 죽기야 하겠어? 통장 잔고가 바닥 날 거라는 불안이 크지. 그래서 난 대책을 마련해 뒀어요. 아파트를 물려주지 않고 세를 주고 있어. 이 나이에도 수입이 있으니까 마음이 평안해져.”

그 다음은 긴긴 노년의 적막과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탑골공원에 가면 하루종일 정물같이 앉아있는 노인들이 있다. 아침이 되면 나와 벤치에 앉았다가 황혼이 지면 돌아간다. 실버타운을 보면 혼자 있으면서 즐기는 방법들을 터득한 노인들이 있다. 회사를 퇴직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70대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20대에 하모니카를 멋지게 부는 친구를 보면 부러웠어요. 그래서 주민센터에 가서 하모니카를 배워요. 어려서부터 뭔가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회사를 다닐 때는 가족을 벌어 먹이느라고 여력이 없었죠. 그래서 노년에 목공일을 배우려고 해요. 요리도 재봉틀도 수놓기도 해보고 싶어. 챙피해도 해 볼거야. 나 같은 노인이 뒤늦게 발레를 배우는 드라마도 있던데 뭘. 나 혼자 시간을 즐기는 건 이제 내 마음대로지.”

친구 관계도 노년에는 변하는 것 같다. 실버타운에 있으니까 80대 몇몇 노인들은 70대인 내게 친구를 하자고 밝게 인사하며 먼저 다가왔다. 멀리 있는 자식이나 1년에 한 번도 보지 않는 옛친구보다 젊은 이웃을 친구로 삼으면 급할 때나 외로울 때 더 좋다고 했다. 그들의 태도도 지혜의 일부였다. 노인들의 놀이를 보면 알게 모르게 직업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인도 대사를 했던 노인이 외교관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줄 책을 쓰는 걸 봤다.

판사 출신의 한 노인은 주민센터에서 컴퓨터와 소설작법을 배워 법정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나와 잘 아는 정보기관장을 한 80대 노인은 자신의 삶을 소재로 첩보소설을 써보겠다고 했다. 노인들의 내면에 20대 문학청년이 들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노년의 문학이나 예술도 괜찮은 것 같다. 연필 한자루와 공책이 있으면 쪽방에 살면서도 즐길 수 있다. 그런 노인을 보기도 했다.

노년에 내면의 산을 오르는 영혼을 탐구하는 것도 좋아 보였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노년에 북한산 자락에 집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경전을 읽었다. 그리고 매일의 명상을 ‘다석일지’라는 형태의 글로 남겼다.

이화여대 교목이면서 불경에 통달했던 80대 말 김흥호 박사의 개인적인 강연을 그가 살았을 때 매주 들은 적이 있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하얀 눈이 덮인 세상을 보면서 서울로 올라와 지하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게 즐거움이라고 했다.

김형석 교수는 백살이 넘었어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수 많은 스승들이 있다. 마음의 눈을 열고 보면 그분들의 지혜가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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