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내 속에 들어있는 ‘거지’

“우리시대 대 가수 윤항기씨는 어린시절 청계천 뚝 밑에서 거지 생활을 하던 걸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고백했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내면에는 거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재물이나 자리를 구걸하는 거지 근성이 있는 건 아니다.”(본문 중에서) 사진은 가수 윤항기씨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거지 근성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라는 짧은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았다. 일상생활에서 공짜에 익숙한 사람들을 얘기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보면서 내 속에 들어있는 거지를 살펴보았다. 어린시절부터 평생 틀어박혀 있는 것 같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부잣집 아이를 사귀어 얻어먹으면 그냥 좋았다. 그들의 놀이에 참여하면 재미있었다. 갚을 줄을 몰랐다. 물론 능력도 없었지만. 대학 시절 장학금에 목매달았다. 돈이 없으면 일을 해서 벌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부자가 기부한 돈을 아무런 댓가도 없이 바랬다. 내 속에 들어있는 거지는 뻔뻔스러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관계가 형성됐다. 나를 호의적으로 봐 준 장군들이 있었다. 우연히 친하게 된 정치인도 있었다. 공직에 있을 때도 특별히 나를 동생같이 생각해 주는 실력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대하는 내 속에는 그 관계를 이용해 보려는 거지가 숨어있었다. 정당한 노력보다 더한 프레미엄을 요구하는 그 실체가 거지 근성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용어로 자기합리화를 할 수도 있지만 적나라하게 ‘거지 근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오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화려한 거지들을 종종 봤다. 껍데기는 그럴 듯하지만 그 속에는 일곱마리 거지 귀신이 들어 있는 것 같아보였다.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자신이 군 시절 안면이 있던 장군이 찾아와 통사정을 하면서 자리를 구걸하더라는 것이다. 그 장군은 하급 장교인 자신에게 꽤나 위압적이고 냉랭했다. 그런 사람도 자리를 구걸하기 위해서는 비굴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를 얻자마자 고관들이 가는 식당 여주인 앞에서 꽤나 거드름을 피웠다. 구걸해서 얻은 권력욕의 표면은 과시인가 보다.

한 식당에서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들과 우연히 같이 밥을 먹는 기회가 있었다. 사업가 한 사람이 그 자리를 비집고 끼어들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그러면서 평생 국회의원이 소원이니 공천을 꼭 받게 해 달라고 했다. 그 모습이 내게는 통사정을 넘어 자기구걸같이 보였다. 국회의원이 돼도 표를 구걸하고 돈을 구걸하고 또 다른 자리를 구걸하고 다닌다.

‘전관예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 시각에서 보면 그것도 관계에 빌붙어 거지노릇을 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큰 돈을 얻기 위해 과거 직장동료에게 구걸하는 걸로 보일 때가 있었다.

종교인들을 보면 신도들 중에 정치인이 있으면 힘을 얻으려 하고 사업가가 있으면 돈을 주기를 바란다. 주려고는 하지 않고 받으려고만 한다. 100년 전 한 종교철학자는 바로 그런 성직자들 속에는 거지근성이 들어 있다고 일갈했다. 언론이나 사회의 모든 분야에 그런 근성들이 있는 것 같다. 물 위에 뜬 백조 같이 연기하는 그들의 다리는 흙탕물 아래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가난해서 진짜 거지가 된 사람들은 차라리 순박하다. 필요한 게 얼마가 되지 않는다. 작은 것에도 만족한다. 변호사를 하면서 거지 노릇을 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깡통을 들고 나가 얻어온 찬밥 덩어리와 언 김치들을 모아 한통에 넣고 버려진 연탄재의 남은 불기에 데워 거지들끼리 나눠 먹고 살았다고 했다.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서 거지를 했던 아이의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어쩌다 천원짜리를 얻으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걸 모아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쓰레기 속의 폐지나 병을 주으면서 고시공부를 해 검사가 된 사람을 알고 있다. 거지 생활 비슷하게 했지만 그는 거지근성이 없었다. 우리시대 대 가수 윤항기씨는 어린시절 청계천 뚝 밑에서 거지 생활을 하던 걸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고백했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내면에는 거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재물이나 자리를 구걸하는 거지 근성이 있는 건 아니다.

진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같은 개절한 자존심을 가진 존재들을 보기도 했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존경하는 그 법관의 아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아버지는 군사정권 시절 모든 법관들의 꿈인 대법관 자리를 사양한 사람이다. 마음이 편치 않아 대법관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보다 실력있는 판사가 있는데 그 사람이 먼저 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관직을 구걸하는 사회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의 고생 때문일까.

언론사 간부들을 고급 호텔에 초청해 식사를 제공하고 돈봉투를 돌리는 자리에 입회한 적이 있다. 나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 돈 봉투를 그들의 자리 옆에 놓아두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앉았던 자리를 체크했다. 식탁보 밑에 돈봉투를 조용히 숨겨두는 방법으로 반환하는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신문에 나온 그들의 글들은 더욱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를 받쳐주는 기둥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거지를 쫓아내려고 애썼다. 쉽지가 않았다. 쫓아내면 어느새 슬며시 다시 숨어들어오곤 했다. 인생은 속에 든 거지를 쫓아내는 과정이기도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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