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오래 전 친구가 생각날 때는…
친구는 꼭 사람이어야만 할까. 개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다나 산을 친구로 하면 안 될까. 옛친구들이 점점 희미하게 사위어지는 걸 느끼면서 하는 요즈음 나의 생각이다. 허름한 차에 텐트를 싣고 혼자 떠돌아다니는 고교동기가 있다. 바닷가나 강가에 작은 텐트를 치고 혼자 산다. 더러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번다. 그가 좋아하는 바다나 강이 친구인 것 같다. 그는 텐트 안에서 파도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을 때 아늑하고 충만하고 투명한 마음이라고 했다.
2년 전 쯤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혼자 지리산 깊숙한 마을로 들어가 12년째 참선을 하며 수행을 하는 수필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호기심에 만남을 청했더니 인연이 됐다. 아직 똥통이 있는 퇴락한 산골집에 살고 있다는 그는 순례자같았다. 차의 뒷좌석을 눕힌 대나무 돗자리가 그의 침대였다. 슬리핑백부터 냄비까지 그의 살림살이 도구가 다 차 안에 있었다. 그 차를 세컨하우스 삼아 그는 세상을 흐르며 살고 있었다.
지난해 장대비가 내리던 칠흑같던 밤 그는 망상해변으로 와서 내게 진리 한 방울을 던지고 갔다. 금년 여름에도 그는 팔백리 길을 와서 깨달음 한 조각 던져놓고 훌훌 떠났다. 번개팅을 하면서 물회 한 그릇 뚝딱 해치운 빈 그릇에는 그의 우정이 고여 있었다. 그 분한테서 새로 선물 받은 친구였다.
어려서는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친구가 만들어졌는데 인생의 황혼이 되니까 그런 틀을 벗어난 허공에서 마음과 마음이 스치면서 친구가 생기는 것 같다.
매일 글을 쓴다. 진심 어린 댓글을 보내오는 분들이 있다.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마음과 마음이 투명한 수채화의 물감처럼 경계를 넘어 서로 스미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다. 젊은 시절의 사귐은 순간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재가 남은 것 같다.
노년의 만남은 따스한 햇빛을 받는 얼음같다고 할까. 조용히 녹아 물이 되어 하나가 되는 그런 감정이다. 그래서 바로 답장을 하지않고 조용히 마음으로 관(觀)한다고 할까.
새로운 친구들이 다가오고 있다. 매일 산책하면서 보는 수시로 오묘한 빛깔로 바다가 나의 아늑한 친구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낡은 사상전집 속의 임어당 선생도 내 친구다. 밥 한끼 같이 하면서 적을 친구로 만들라는 어제 쓴 글도 그의 속삭임을 내 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실버타운의 쓰지 않는 밥상을 빌려 내방 창가에 놓고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을 붙이니까 상도 나의 친구이자 득음 바위가 된 것 같다.
오랫동안 연락을 안 했던 친구 두 명이 갑자기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은 카톡이라는 편지가 참 좋다. 그 중 한 명에게 썼다.
‘그때 잘 얻어먹었어. 고마워’
밑도 끝도 없이 압축된 마음을 적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모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얼마후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는 학교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나를 당시 ‘한일관’이라는 이름난 음식점으로 자주 데려가 음식을 사 주었다. 열등감에 오랫동안 인사를 하지 못했다. 바로 카톡의 응답이 왔다.
‘그래 옛날 이야기 좋다’
좋은 친구인데 환경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내가 먼저 스스로 벽을 만들고 멀리 했었다. 그는 지금도 즉각적으로 화답을 해준다.
마음으로 들어온 또 다른 친구에게 내친 김에 카톡을 했다.
‘그때 너희 집 불고기 반찬 맛 있었어. 잘 얻어먹었어. 고마워’
그 시절 그의 집은 잔디밭이 있는 혜화동의 이름난 부자집이었다. 서울대 수학 교수를 한 그는 고교1학년 때도 수학의 천재였다. 그는 학교가 끝난 후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마다 얻어먹은 저녁 밥상에는 불고기가 담긴 접시가 있었다. 그에게서 즉각 카톡으로 답이 왔다.
‘강원도에서 잘 지내지? 나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더 이상 불고기 반찬 못 먹어. 어머니 손맛이 그립네. 항상 네 글 재미있게 읽고 있어.’
좋은 친구들을 가진 나는 행복하다. 속을 드러내고 약함을 드러내고 다가가는 것도 친구를 만드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삶의 모습을 편안히 보여주는 좋은 글을
보여주시네요. 틈날때 잘 보고있읍니다
저는 7학년5반 할머니인데 엄선생님 후배들과 그시절 써클활동을 했지요. 늙은후 취미로. 약 10년간 그림을 그렸는데 이제는
힘들어 그만 두었읍니다 고민끝에 생각해낸것이. 글쓰기인데 이게 힘드네요 배움이 필요할것도같고,,, 자신의 내부와 약함을 먼저
내보일때 상대방의 마음문이 열린다고 저도 믿고 설쳐보는데 잘 안 됩니다. 오랜시간 함께한. 친구들인데도 엘리트들의 마음문이
어찌나 단단한지. 허탈감이 오기도 하네요
나만 속을 훤히 들어낸 바보가 되어있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뻔뻔하게 오지랖을 떨며
계속 문을 두드려볼 생각입니다. 실버타운에 계시다는데 혹여 생각나시면 시절인연처럼 인사라도 나눌수있기를 바래봅니다
안주셔도 물론 괜찮습니다. 번호는 010 8877 0687 영문학을 전공한 조경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