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종교보다 강한 밥 한끼
나는 상대방에게 날을 세우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법정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나의 사무실까지 쳐들어와 내게 따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쪽을 마귀로 간주했다. 우리편도 그들을 악마로 여겼다. 마귀를 대리하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마귀라고 했다. 이단이라고 불리는 종교단체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었다. 돌과 돌이 부딪쳐 푸른 불꽃을 튀기고 증오가 극에 달해 있었다.
변호사인 나는 법 저울로 중심을 잡아야 했다. 종교전쟁에 앞선 투사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썩은 나무를 신으로 모셔도 법은 개입하지 않는다. 법의 밥을 먹고 사는 나는 그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단인지 아닌지는 변호사 업무영역이 아니었다. 다만 이단 교주라는 사람의 실정법 위반을 법의 제단 위에 올려놓고 판단을 구할 뿐이다. 처벌의 영역은 검사 담당이다. 변호사는 불법행위의 댓가인 돈을 받아주는 업무였다. 동시에 내 의뢰인들의 비밀이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할 법적 의무가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어느새 오후 1시 가까이 가고 있었다.
부교주라는 상대방 남자와 싸우고 있는데 여직원이 먹기 좋게 자른 샌드위치를 우유와 함께 접시에 담아 가지고 들어와 싸우는 우리들 가운데 놓인 탁자에 놓았다. 그 누구든 점심을 놓치고 사무실에 있으면 간단한 음식을 내놓는 아내가 만든 규칙이었다.
“싸우는 건 싸우는 거고 자 같이 드시죠.”
내가 이단 종교의 부교주라는 남자에게 권했다.
“어?”
그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이 묘했다. 거절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받아들기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세계대전 당시 그 치열하게 싸우던 전선에 있던 독일군과 프랑스군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상부의 공격 명령을 어기고 캐롤을 같이 부르고 축구경기를 했답니다. 같이 점심을 못먹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당신을 악마로 보지는 않습니다.”
내가 다시 음식을 권했다.
그는 망설이면서 내가 주는 빵을 받았다. 나의 눈에 그는 그냥 인간이었다. 그의 영혼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것은 영적인 영역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분위기가 돌변했다.
그가 교주에게 해외전화를 걸어 전격적인 합의를 건의했다. 교주가 심복인 그의 제안을 승락했다. 몇년을 이끌어 오던 소송이 마무리 되던 순간이었다. 증오와 냉랭한 법이론보다 같이 먹는 한끼의 음식이 마음을 여는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걸 실감했다. 하기야 프랑스혁명도 루소의 이론보다 빵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닐까.
때로는 함께 음식을 먹는 자리가 위대할 때가 있다. 함께 밥을 먹으면 적대감이 줄어들고 평화로운 마음이 된다. 과열된 논쟁을 식힌다. 싸움이 법정이 아니라 식탁에서 해결되기도 한다. 함께 밥을 먹으면 마음이 누그러져 분쟁이 예방되기도 한다.
시인인 고교 1년 선배가 있었다. 성격이 깐깐하고 얼굴이 하얗고 검고 짙은 눈썹의 미남이었다. 정의만을 말하는 그와는 어쩐지 마음의 거리가 있었다. 50대 말쯤이었을까. 그가 같이 밥을 먹자고 뜬금없이 연락을 해서 나갔다. 그는 내게 맛있는 점심을 사면서 죽기 전에 나하고 밥을 같이 먹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와 헤어진 후 나의 깊은 내면의 우물 속에서 어떤 은은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나 같은 놈을..’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후 보지는 못했어도 마음의 거리가 없어졌다.
넝마주이와 거지 생활을 하면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분이 있다. 시장의 과일가게 청년이 책을 읽는 그를 신기하게 여겨 1년 동안 그에게 국밥을 대줬다. 넝마주이는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어 부인과 함께 과일가게 청년을 찾아왔다.
검사부부는 큰 절을 하고 얻어먹은 밥값을 갚았다. 나만 아는 숨어있는 얘기다. 나는 밥을 참 많이 얻어먹었다. 소년과 청년 시절은 마음 좋은 부자 친구들로부터 많이 얻어먹었다. 그 밥에서 우정이 흘러나왔다.
변호사가 되어서, 그리고 노년인 지금은 가급적이면 밥을 자주 사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밥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덕인 줄을 이제는 깨닫는다. 오늘은 종교보다 강한 밥 한끼의 힘에 대해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