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만나는 사람마다 한권의 책이었다”

“칠십 고개를 넘긴 요즈음은 <세계사상전집>을 하나씩 보고 있다. 노자 맹자 장자를 다시 읽고 지금은 임어당을 다시 보고 있다. 깨달음은 책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매일 마주치는 현실속에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사진 이병철>


“나는 독서를 통해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방법과 
감사하며
모든 걸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웠다”

나는 종교적 수행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기도원도 여러 군데 가보았다. 교회의 박스같은 기도방에 들어가 하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부흥회에 참석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성령을 보려고도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 같이 기도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천주교에서 하는 묵주기도나 불교의 염불 기도가 좋아보였다. 짧은 음절을 만트라로 해서 반복하면 마음속에 공명이 온다는 방법이었다. 이해는 되는데 시간낭비일 거리는 회의가 들었다. 참선이나 명상을 권유받기도 했다. 자신의 호흡을 의식하며 모든 상념을 버리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정지하고 진공상태 속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장난꾸러기 원숭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 같았다. 사람마다 수행 방법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히 신문의 귀퉁이에 있는 짧은 칼럼을 읽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매일 아침 의관정제하고 서책을 읽었다고 했다. 조선의 선비들이 책을 읽는 것은 참선이나 명상과 같은 수행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걸 읽고 내가 택한 수행 방법은 독서였다.

30년 세월의 저쪽 어느 봄날 내게 깨달음을 준 변호사를 하는 대학후배가 있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찾아와 변호사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가야할 길 세가지를 제시했다.

첫번째는 자기 같이 정치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두번째는 미국으로 유학가서 전문영역을 더 연구하고 돌아와 로펌을 차리고 돈을 번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고전부터 시작해서 많은 책들을 고시공부하듯 꾸준하게 읽으면 10년 20년 후엔 그 내공이 상당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마지막 방법이 나의 가슴을 강하게 찔렀다.

다음날부터 실행에 옮겼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세계문학전집>의 토스토엡스키부터 시작했다. 확대경을 구입해 누렇게 표지가 바래고 종이가 파삭파삭 부서지는 책의 페이지를 고문서 보듯 한장 한장 들추어 갔다.

나는 얼마 있지 않아 그 속에 묻혀 있는 보물들을 바로 발견했다. 토스토엡스키 책 속의 죠시마 장로는 예수 그 자체였다. 톨스토이의 책 속에는 절대자의 생명력이 그대로 고여 있는 것 같았다. 톨스토이라는 거울에 비친 하나님을 본 것 같았다.

나는 귀한 깨달음이나 아름다운 문장을 노트에 필기하며 읽었다. <한국문학전집>도 읽었다. 한국전쟁과 가난 그리고 처참했던 우리의 현실이 문학 속에 그대로 존재해 있었다.

역사는 기본이 되어 있었다. 세계사와 한국사는 고시공부 시절 시험과목에 들어있어 기본은 달달 외우고 있었다. 거기에 의미를 찾아가는 독서를 하면 될 것 같았다. 철학에도 도전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을 사다놓고 읽었다. 도무지 읽어지지가 않았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기로 했다. 그렇게 끝까지 가기는 했다. 그런데 머리가 둔해서 그런지 솔직히 한 페이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머리용량이 당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3년 동안 서울의 여러 도서관을 다니면서 시를 읽고 좋은 시어들을 발견했다. 강가에서 아름다운 잉어를 낚시하듯 노트북에 담겨있는 시어들을 보면 강가에서 잡은 물고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칠십 고개를 넘긴 요즈음은 <세계사상전집>을 하나씩 보고 있다. 노자 맹자 장자를 다시 읽고 지금은 임어당을 다시 보고 있다. 깨달음은 책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매일 마주치는 현실속에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변호사 생활 40년 가까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어리석음을 보았다.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이 한권의 책이었다. 내 스스로 피고가 되어 재판을 받아보기도 했다. 자신의 피로 찍어 쓴 책이 가장 절절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서는 생생한 아픔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픔의 체험 없는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30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면 나름대로 세월이 지난 셈이다. 나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마법같이 하늘 눈이 열려 미래와 상대방의 속을 꿰뚫을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니다. 영적 존재를 만난 강한 신비체험도 있었는지 의문이다. 비슷한 게 한번은 있었다. 수행과 도의 영역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생각이다.

나는 어떤가. 독서를 통해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방법을 배웠다. 감사하며 모든 걸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웠다. 그런 것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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