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깨달음 전하는 판사

“불경 중에 인간을 세 종류로 분류해 연꽃에 비유한 부분이 기억난다. 물에 잠긴 연꽃, 물 위에 피어있는 연꽃, 물에 잠겼다가 떠올랐다가 하는 연꽃 세 가지였다. 물에 잠긴 연꽃은 이 세상에 젖어있어 진리를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에 잠겼다가 떠올랐다가 하는 연꽃에게만 불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도 흐려져 있는 진흙탕물 밖의 세상을 보고 싶다. 그게 깨달음은 아닐까.”


“불교의 깨달음이란 고정관념, 선입견 없이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

해변을 산책하는데 스마트폰에서 저절로 유튜브의 동영상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민감한 터치 화면이 우연히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타난 화면 속에는 금빛 불상 앞에서 신도들에게 법문을 하는 근엄해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발에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진 노인이었다.

화면 밑에는 그가 전직 판사라고 소개하는 자막과 함께 이름이 나와 있었다. 아는 사람이었다. 군대 훈련 시절 같은 내무반에서 넉달 동안 옆자리에서 함께 자고 같이 밥 먹고 같이 흙먼지가 일던 연병장을 기던 사람이었다.

제대 후 그는 판사가 됐다. 2년전쯤이었다. 신문에서 그가 여러권의 불경해설서를 냈다는 기사를 봤다. 그가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불상 앞에서 점잖게 얘기하는 걸 듣기 시작했다.

“저는 사실 특별한 철학이나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특별히 고생하지 않고 서울 법대를 갔고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판사도 특별한 뜻이 있어서 한 게 아니라 내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자랑같은 고백을 해서.”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군 훈련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그는 집안이 좋았다. 집안의 형이 군단장이라 우리가 속한 부대 장교들이 속으로 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 나이 마흔 가까웠을 때였습니다. 판사 생활이라는 게 사건에 쫓기는 틀에 박힌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래 희망이라는 건 대법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내 인생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죠. 불교서적을 이것저것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으로 갈증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사표를 쓰고 나와서 본격적으로 진리에 대한 공부를 해봤습니다. 1년에 불교서적 2백권을 읽으면서 도대체 깨달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참선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참선은 못하겠더라구요. 방바닥에 가만히 앉아서 화두를 푸는 건데 온갖 상념이 머리 속에서 들끓는 겁니다. 그렇다고 깨달음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갑자기 툭 떨어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만 공부를 통해 을 불교의 윤곽을 어렴풋이 알게 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더듬은 그 그림자를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전직 판사답게 그는 다음부터 윤회나 연기론 등을 법관이 법리를 전개하듯 설명해 가고 있었다. 그의 말중에 이런 부분이 귀에 들어왔다.

“저는 불교의 깨달음이란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없이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찍부터 어떤 일정한 틀을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판사를 그만두고 서초동에 클래식음악만 틀어 주는 커피숍을 차린 적이 있었다. 특이하다는 생각이었다. 법원장급을 지낸 다른 판사들을 보면 대형 로펌의 대표가 되고 싶어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기도 했다. 정치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도 많았다. 변협회장이 되고 싶어 하기도 했다. 지하다방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고시공부하듯 불교서적을 많이 읽었지만 깨달음은 얻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진정성 있는 솔직한 말 같았다. 그러면서 수많은 책을 읽고 깨달음에 대한 그의 추론을 말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사과를 한 입 깨물어 먹을 때 그 느낌같은 것은 아닐까. 사과에 대한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읽고 그걸 말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한 입 깨물어 먹고 느끼는 맛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나도 불교에 관한 서적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동양의 수억명의 사람들의 정신을 바꾼 철학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불경 중에 인간을 세 종류로 분류해 연꽃에 비유한 부분이 기억난다. 물에 잠긴 연꽃, 물 위에 피어있는 연꽃, 물에 잠겼다가 떠올랐다가 하는 연꽃 세 가지였다.

물에 잠긴 연꽃은 이 세상에 젖어있어 진리를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에 잠겼다가 떠올랐다가 하는 연꽃에게만 불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도 흐려져 있는 진흙탕물 밖의 세상을 보고 싶다. 그게 깨달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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