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나는 그런 기적을 봤다. 남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아직 어둠이 엷게 남아있는 새벽이었다. 상가의 문을 열지 않은 제과점 유리문 앞에 작달막한 남자가 서 있었다. 유난히 키가 작다. 얼핏 어린아이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입고 있던 점퍼 안에서 묵직한 망치를 꺼냈다. 그리고 제과점의 유리문을 힘껏 내리쳤다. ‘펑’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가 가루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그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새벽 옆동네 한 의상실 앞이었다. 먼동이 트면서 하늘에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한적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쇼윈도우 앞에 작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옷 속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다.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주변 새벽공기를 갈랐다. 매일 새벽 영등포와 구로동 일대의 상가를 돌아다니며 유리문과 진열장을 파괴하는 괴한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다고 도둑은 아닌 것 같았다. 분실된 물건들은 없었다.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면서 그를 체포했다. ‘묻지마’ 범행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구치소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그는 뚜렷한 범죄 동기가 없었다. 유리창을 파괴한 제과점이나 의상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는 그냥 내면에서 뭔가가 시키는 것 같아 새벽마다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의 내면에 뭐가 들어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30대 중반인 그는 유난히 키가 작았다. 중학교 다닐 때 공부도 꼴등이라고 했다. 가난한 말단 공무원의 여섯 아들 중 막내라고 했다. 형들은 모두 키가 크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했다. 유난히 그만 불량품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그를 따돌렸다. 슬프고 외로웠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지하 목욕탕 구석에서 구두를 닦았다. 커다란 상자 속에 유폐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목욕탕 손님들에게도 놀림거리였다. 왜 그렇게 키가 작으냐고 묻곤 했다.
그는 30대에 벌써 당뇨증세가 나타났다. 얼굴색이 변해갔다. 그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하늘도 미웠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렇게 불공평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속에서 어떤 존재가 나가서 다 때려 부숴버리라고 했다. 어느 날 새벽 그는 커다란 돌을 주워 상점가의 진열장을 박살냈다. 속이 시원해졌다. 그 행동이 연속되다가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정상참작이 되어 그는 풀려났다. 다시 그는 목욕탕 구두닦이로 돌아갔다.
그 얼마 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허망한 삶이었고 허망한 죽음 같았다. 그는 왜 죽어야 했을까. 키 작고 공부 못하는 게 죽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외모나 가난 때문에 그는 행복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려서부터 중증의 뇌성마비인 여성의 소송을 대리한 적이 있다. 천형을 받은 것 같았다. 명석한 뇌 작용을 빼고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혼자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었다. 밥을 먹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다. 소변이나 대변을 볼 수도 없다. 혼자 이불을 덮고 잘 수조차 없다. 잘못하면 이불에 눌려 질식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가난했다.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의식이 희미한 식물인간이면 자신의 처지를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높은 아이큐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리게 했다. 그러나 스스로 어떻게 할 능력이 없었다. 자살할 약을 사러 갈 수도 없고 한강다리로 가서 떨어질 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벌레만도 못하다고 느꼈다.
한번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어져 있었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바로 누울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람이 올 때까지 여섯시간 동안 엎어진 자세로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면서 살려달라고 하나님한테 간절히 기도했다. 그녀는 변호사인 내게 “한번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온몸을 꽁꽁 묵고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구석에 처박혀 있어보라”고 했다. 그게 자신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녀는 판잣집 뒷방에서 라디오를 통해 세상과 만났다고 했다. 그녀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손가락 두 개였다. 그녀는 그 손가락에 연필을 끼우고 벽에 기대어 시를 썼다. 그녀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내게 전했다.
어느 날인가 그녀가 있는 방의 어둠침침한 구석에서 30대 초반의 남자가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다정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인지 짐작은 갔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시를 하나 불러줄 테니 그녀에게 받아쓰라고 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남자의 말 중에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났다.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고 대들었다. 그 남자는 그래도 그렇게 쓰라고 그녀를 달랬다. 어느 순간 그 남자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얼마 후 그 시가 노래가 됐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찬송시를 들으면서 그녀는 시를 받아적을 때의 마음 속 신비한 떨림을 떠올렸다.
그 시는 천만 기독교인이 애창하는 찬송이 됐다. 그녀는 천재 시인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라고 돈을 보내주었다. 그를 24시간 돌볼 천사도 나타났다. 처절하게 혼자인 그녀는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남이 가진 건강이 없어도 배운 게 없어도 재산이 없어도 매일 행복하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분의 영과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나는 그런 기적을 봤다. 남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