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돈이 절실한 분들께

“돈을 번다고들 하지만 뺏는 경우가 있고 얻는 경우가 있고 진짜 버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강도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뇌물을 받는 경우는 돈을 뺏는 것이었다. 능력 없는 사람이 주식이나 다단계를 통해 대박을 내려는 것은 그냥 돈을 얻으려는 심리로 보였다. 나는 정직한 땀과 바꾸어야만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본문 가운데)

공사 현장에서 잡부 일을 하는 20대 청년의 하루가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날이다. 어둠이 짙은 새벽 4시경 직업소개소의 대기 의자에 청년이 앉아 있다. 대학생이라고 한다. 사무실의 직원이 그날 잡부 일을 할 장소를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일을 얻은 청년은 작업복과 신발이 담긴 묵직한 가방을 들고 공사장으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 공사장까지는 1시간 반 가량을 가야 하는 거리다. 청년은 모자란 잠을 채우려는 것인지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이윽고 주택가의 작은 공사현장에서 차가 서고 청년이 내린다. 서너 명의 노동자를 앞에 세운 공사감독의 훈시가 떨어진다. 받는 돈 이상으로 일을 잘해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또 다시 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잡부인 청년은 철근을 나르고 얼어붙은 땅을 곡괭이로 파고 하수구의 더러운 쓰레기들을 삽으로 걷어낸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시간이다. 뼈속까지 스미는 추위에 청년은 구멍 뚫린 드럼통 속에서 타고 있는 불에 몸을 녹인다. 깜빡 잠이 온다. 다시 작업이 시작되고 어둠이 내릴 무렵에야 하루 일이 끝난다.

다시 차를 타고 소개소로 돌아온 청년은 담당자가 일당의 10퍼센트를 떼고 주는 나머지 돈을 받는다. 청년은 받은 5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소중하게 지갑에 넣는다. 하루 흘린 진한 땀의 댓가다. 다른 알바보다 액수가 많은 돈을 당일 바로 받기 때문에 일용잡부를 한다.

그 돈을 모아 대학 등록금을 내고 아버지 어머니 용돈도 드린다고 했다. 우연히 보았던 노동을 하는 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다가구 주택을 짓는 현장에서 일을 하던 그 청년은 나중에 그런 건물을 가져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청년을 보면서 돈이 절실하던 젊은시절의 기억이 안에서 기어나오고 있었다. 20대 중반 쪽방보다 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한달 한달 생활비가 필요했다. 집에서는 더이상 돈을 댈 능력이 없다고 했다.

일을 할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장학금을 타야 했다. 장학금 지급여부를 심사하는 교수가 특이했다. 파란 빛이 비칠 정도로 머리를 빡빡 깎고 지정하는 깊은 산속의 암자에 유폐되어 공부할 걸 조건으로 내걸었다. 돈만 준다면 어떤 조건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돈을 구경하기 어려운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함박눈 퍼붓던 열여섯살의 겨울날이었다. 냉기 서린 다다미방에서 추워 떨고 있었다. 방안인데도 손이 꽁꽁 얼어붙었다. 나는 허공에서 춤을 추며 내리는 흰 눈송이들을 보면서 그 장면을 영원히 뇌리에 박아두겠다고 마음먹었다.

춥고 외로운 소년에게 그해 겨울은 흑백의 계절이고 몽상이고 추억의 계절이었다. 그 시절 우연히 텔레비젼 화면에서 지갑에 돈을 두둑이 담은 남자가 주변 사람에게 인심 쓰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계속 가난했다. 산동네 한 평 반짜리 쪽방을 빌려 살던 신혼 시절도 궁핍했다. 주머니에 있던 전 재산인 은빛 동전 하나로 사과 한알을 사서 아내에게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현실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돈이었다. 다른 철학은 돈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공허한 관념이나 추상이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람을 보면 위선을 부리는 것 같아 화가 났다. 20대를 넘기고 30대 전반에 변호사가 됐다. 그 시절 사람들은 나를 부자로 착각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당연히 내가 밥과 술을 사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나는 돈이 없었다. 돈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같았다. 누구나 그 기러기를 보지만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돈이라는 기러기를 잡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돈을 어떻게, 얼마나 벌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돈을 번다고들 하지만 뺏는 경우가 있고 얻는 경우가 있고 진짜 버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강도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뇌물을 받는 경우는 돈을 뺏는 것이었다.

능력 없는 사람이 주식이나 다단계를 통해 대박을 내려는 것은 그냥 돈을 얻으려는 심리로 보였다. 나는 정직한 땀과 바꾸어야만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직한 지식노동자가 되고 싶었다. 길거리에 앉아 법률 서류 한장 써주고 만원을 받아도 그 돈이 더 귀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직하면 돈이 오지 않는 것 같았다. 진실은 항상 비호감이었다.

돈은 어느 정도 있으면 될까 그 기준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더러운 놈들의 노예가 되어 더러운 꼴 안 볼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갈공명도 뽕나무 칠십 그루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매이지 않는 삶을 유지했다고 했다.

검소하게 안쓰고 사는 방법을 강구했다. 알고 지내던 소설가 정을병씨는 문학을 하기 위해 평생 하루 한끼만 먹기로 결심했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쌀 한줌과 연탄 두장 그리고 김치 몇 조각이면 하루를 살면서 글을 쓸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돈 없이도 혼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강구했다. 그 길을 성경 안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스물다섯 살부터 칠십까지 45년간 경제활동을 하다보니 속인의 속박을 면하고 노년에 실버타운에서 한적과 여백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번 것 같다.

그 돈으로 손자 손녀 용돈도 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색하지 않게 밥을 사기도 한다. 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너는 여유가 있어 추상이나 관념적인 글을 쓰지만 나는 힘들고 돈에 절실하다고 아픔을 얘기하는 분이 있다.

내 나이 정도 될 때까지 정직한 땀을 흘리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리라고 생각한다. 위로해 주고 싶어 지난날을 잠시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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