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짧은 만남, 긴 여운

“성경 속 사도 바울도 진리를 전할 때 텐트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웃기면서 전했다고도 한다. 자리가 끝날 무렵 서로 돈을 내려고 하는 바람에 밥값을 내기도 힘들었다. 짧은 시간 많은 걸 배운 향기로운 모임이었다.”(본문 가운데)

 

30년 고교 선배로부터 들었던 말이 있었다. 월급쟁이였던 그는 약간의 돈만 있다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밥을 사면서 그들의 철학을 들어보면 참 좋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이란 우연히 만나거나 평범해도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외국을 보면 많은 돈을 내고 식사 한끼 같이 하면서 저명인사에게 한마디 들으려고 하는 이벤트도 있다.

예전의 수행승들의 글을 보면 깨달음의 말 한마디를 얻기 위해 수 백리, 수 천리를 걸어서 현자를 만나러 가는 경우가 있다. 그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며칠 전 너덧 명의 그런 분들 점심모임에 초청 받았다. 마음공부를 한 분도 있고, 목사도 있고, 철학을 한 전직 법원장도, 마취과 의사도 있었다. 동해에서 기차를 타고 경복궁 옆 서촌의 작은 음식점으로 갔다. 마음공부를 한 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생을 본다는 사람이 있어요. 찾아가서 30만원을 내고 내 전생을 물어봤죠. 그 사람은 사람의 전생을 보는 독특한 영적인 눈이 있는 것 같아요.”

윤회부터 화제가 됐다. 종교에 상관없이 서로 상대방의 얘기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얘기를 꺼낸 분은 명상과 마음공부에 대해 메이저 일간지에 연재해서 글을 쓰고 있는 분이었다. 샐러드와 피자가 나오고 와인이 한잔씩 따라졌다.

“그래도 밥 먹기 전에 목사님이 기도해야 하지 않나?”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義에 주리고 목 마른’ 법관 출신이 말했다. “밥 먹은 후에 기도하면 안 되나? 잘 먹었다고 말이지. 왜 꼭 전에 기도를 해야하지?”

재미있는 분이었다. 그는 극동방송에서 종교컬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불교는 정말 대단한 최고의 철학이예요. 그런데 헤겔을 읽어보면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설명이야. 실존철학자 상당부분이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설명이지.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는데 안 죽었어. 신이 어떻게 죽을 수 있겠어? 니체가 그렇게 안티였는데도 죽어서 교회에 묻힌 걸 보면 신기해.”

판사 출신인 그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작곡을 하고 신학을 하고 오케스트라 지휘를 했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목사가 한마디 했다.

“우리 집은 원래 불교 집안이었어요. 저도 젊은 시절 스님이 되려고 경봉 스님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 스님이 나를 보더니 하시는 말씀이 너는 재가에서 수도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대학을 졸업하고 MBC에 입사해서 아홉시 뉴스의 앵커까지 됐죠. 그런데 집사람이 지독한 예수쟁이인 거예요. 몰래 따라가서 예배하는 광경을 봤더니 단 위에서 방언들을 하고 별 짓을 다하는 겁니다. 이건 완전히 사이비 이단이구나 하고 방송으로 고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도 아내는 단 위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뒤의 좌석에 앉아 아직 돌아오게 할 기회는 있구나 생각했죠. 마음을 다잡아 먹고 카메라를 들고 스탭진과 다시 그곳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내가 울고 있는 거예요. 고발하러 갔다가 내가 거꾸로 잡혀서 목사가 된 거죠. 저는 영적인 것 성령을 믿어요. 예수를 잠시 인간으로 내려온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분이 내 집에는 너희들이 묵을 방이 많도다 라고 했어요. 윤회보다는 거기로 가는 구원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종교 그리고 철학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정치적 성향을 전혀 달리하는 두 언론사 출신의 언론계 중진도 있었다. 무거운 주제를 코미디 같이 말하면서 웃고 떠들었다. 그 자리에 있는 법원장 출신의 철학자는 내가 젊었던 시절 국선변호를 할 때 재판장이었다. 내가 농담같이 한마디 던졌다.

“내가 그때 법정에서 불만이 있었던 적이 있어요. 법정이라는 무대에서 재판장은 왕같은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잖아? 나는 조역인 변호사 역할에 은근히 불만이 있었지. 그러다가 깨달았죠. 그분은 사람의 그릇에 따라 왕의 역할도 주고 왕궁의 문지기 역할을 주기도 한다는 걸. 뭘 하든지 자기가 맡은 역에 충실하면 된다는 걸 세월이 가서야 알았죠.”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요? 법정 드라마나 영화를 봐. 판사가 주인공인 경우가 어디 있어? 다 변호사가 하지. 나야말로 평생 법정에 소품같이 앉아서 조역 내지 엑스트라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요.”

성경 속 사도 바울도 진리를 전할 때 텐트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웃기면서 전했다고도 한다. 자리가 끝날 무렵 서로 돈을 내려고 하는 바람에 밥값을 내기도 힘들었다. 짧은 시간 많은 걸 배운 향기로운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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