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평생 한우물 파신 선생님 존경합니다

송해 선생 별세 전 한우물정수기 광고. 

아침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다가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여보 조선일보에 기사가 났는데 한우물 정수기 회사가 매출이 1조원이래. 물을 해외에도 수출하고 말이야. 준재벌급이래. 강 선생님이 성공하셨네. 그렇게 물에 미쳐 계시더니.”

고교 은사가 경영하는 회사였다. 선생님은 어느날부터 물에 미쳤다. 급기야 선생님은 사표를 내고 안암동 개천가의 허름한 작은 공간을 빌려 정수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든 선생님을 모두 말렸다. 심지어 부인까지 사업을 할 거면 안 살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갔다.

물에 미친 선생님은 외고집으로 그 길을 갔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속칭 일타강사의 능력이었다. 명문고와 서울사대를 졸업했다. 명문고의 영어선생을 하면서 수많은 과외를 요청받고 학원에서도 스카웃 하려고 눈독을 들였다. 그 모든 걸 거절하고 교사의 길에 매진하던 선생님의 물기계 사업은 이해할 수 없는 변신이었다.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좋은 물이고 그 물을 만들어 주는 게 가장 숭고한 일이라는 엉뚱한 깃발을 들었다.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공직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퇴근 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초라한 모습에 거의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이었다.

“내일 부도가 나. 돈 좀 있으면 꿔 줘.”

선생님으로서의 체면은 이미 던져버린 것 같았다. 그날이 월급날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월급봉투를 정신없이 빼앗듯 가지고 갔다. 드디어 올 게 온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이 곧 망할 것 같았다. 사업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고지식하고 완고했다. 작은 불의에도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정수기는 세일즈가 중요한데 그 성격에 팔지 못할 게 분명한 것 같았다. 선생님은 돌아다니며 물기계 장사가 아니라 물의 효능을 전하는 전도사를 하고 있었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허름한 찌개집 단골이던 소박한 선생님이 큰 호텔 레스트랑에서 내게 저녁을 내겠다고 했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사우디에서 내 물 기계를 수입하겠다고 대량 주문이 왔어. 돈나무에 돈이 주렁주렁 열렸어. 난 부자가 된 거야. 이제부터 그 돈을 나누고 베푸는데 쓸 거야.”

선생님은 정말 그럴 사람이었다. 담임을 할 때 돈 없는 아이의 책상에 몰래 체육복을 사서 넣어주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없어도 힘든 사람을 보면 참지 못했다. 공장의 직원들도 제자같이 대하고 잘해 주었다. 공원들은 그를 사장이라고 하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 얼마 후였다. 다시 만난 선생님이 분노한 얼굴로 내게 털어놓았다.

“나 물 기계 공장 문 닫아버렸어. 어느 날 금속노조라고 하면서 낯도 모르는 놈들이 공장에 오더니 ‘사장 새끼 어디 있어?’라고 하면서 나한테 행패를 부리는 거야. 노동을 착취했다는 거야. 그래서 나보다 잘 해 준 사람있으면 대보라고 덤볐지. 나는 마음으로는 노조편이었는데 그 놈들을 보니까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야. 그래서 너희놈들한테 굴복하기보다는 공장을 닫아버리겠다고 했어. 그리고 사우디 수출도 모두 취소해 버렸어. 나는 망해도 그런 새끼들한테 지지 않아.”

원래 성격이 그런 분이었다. 선생님은 눈 앞에 다가온 부자가 될 챤스를 놓쳤다. 그래도 선생님은 물에 대한 광신자였다. 선생님은 전국을 다니며 좋은 물을 찾아다녔다. 속리산의 암반수를 퍼올려 선생님이 개발한 전기분해 기술로 다시 가공해 약알칼리수로 만든다고 했다. 선생님은 평생을 내게 좋은 물을 보내주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선생님도 80대 노인이 되면서 아들이 대를 이어 물 전도사가 됐다. 나는 선생님 부자가 잘 됐으면 하고 속으로 걱정했는데 아내가 신문에서 매출액 1조대의 준재벌이 됐다는 기사를 봤다는 것이다. 한 지면의 4분의 1쯤 되는 기사의 크기와 매출액을 나타내는 도표까지 봤다고 했다. 선생님 부자의 소망이 이루어 진 것이다.

한우울정수기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포털사이트에서 그 기사를 검색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디에도 아내가 말한 기사는 없었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집사람이 매출 일조원의 준재벌급이 되셨다는 기사를 봤다고 해서 전화를 걸었어요. 맞아요?”

“아닌데, 아직도 은행 빚이 남아있어. 그렇지만 곧 주식을 상장할 거야.”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했다. 아내가 워낙 확신을 가지고 말해서 믿었는데 아닌 것이다. 아내가 더러 그런 증세가 있었다.

“선생님 우리 집사람이 가끔 헛걸 보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 말로는 성령이 알려준다고 그래요. 아마도 미래에 나올 신문기사를 미리 본 건 아닐까요?”

“자네가 말하니까 나도 그렇게 믿어져. 요 며칠간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먹었는데 자네 말에 싹 나은 것 같아.”

선생님과 나는 웃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내가 아는 부자 노인에게 연락을 해서 그 회사를 감정해 보라고 했다. 은행원 출신의 그 노인은 주식에 해박한 수천억대 부자였다. 내 말에 부자노인이 이리저리 컴퓨터를 뒤지더니 말했다.

“엄 변호사가 말한 회사는 비상장주식도 한주 거래한 흔적이 없어. 남의 돈 절대 안 쓰는 튼튼한 회사구만.”

나는 아내가 미래의 기사를 먼저 보았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준재벌급 부자가 될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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