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나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 일용할 양식은 틀림없이 얻을 거고 확신한다. 공중 나는 새도 그 분이 먹여준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 

젊은 시절 한동안 아내가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화가 났다. 누군들 그걸 모를까.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카피가 유행하고 있었다. 책방에는 주식과 부동산 투자 관련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친구들을 보면 순간순간 주식시세를 살폈다. 땅을 보러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다.

부자도 가난도 상속이 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긴 노년은 가난과 적막이었다. 나도 그럴 것 같았다. 나는 돈 버는 재주가 없는 내 주제를 진작에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40대 무렵 내가 아는 부자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와서 교수 하는 놈이 나한테 와서 돈버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거야. 점잖은 폼은 다 잡으면서도 돈은 가지고 싶은 거지. 그 꼴을 보니까 밸이 뒤틀리더라구. 그래서 말했어. 돈 벌려면 폼 잡지 말라고. 매춘이나 마약 장사를 하면 돈이 들어올 거라구 했어. 그런 건 격이 안 맞다고 안할  거야. ”

냉소적인 말이었지만 그 속에 뭔가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하는 변호사만 해도 불법을 덮어주고 탈법을 제시해야 돈을 버는 것 같았다. 죄를 졌으면 책임을 지라고 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하면 굶어 죽기 딱 알맞았다. 이상하게 돈이라는 물고기는 흐린 물속에 살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좋은 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이 도망 가는 것 같았다. 조폭들을 보면 돈이 넘쳐났다.

그렇다고 아무나 불법을 한다고 돈을 버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의 신인 마귀가 돌보아 주는 존재들만 돈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감옥에 있거나 사기 피해자가 되어 조금 있는 것마저 다 털리는 걸 봤다. 공중을 나는 기러기를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그걸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예전의 현인이 말했다. 돈이 그 기러기와 같다는 것이다. 기러기 잡은 사람을 만나 방법을 물어보고 싶었다.

증권회사를 경영하면서 재벌이 된 그 업계의 대부가 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그 노인에게 어떻게 증권으로 돈을 벌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증권은 장난이라도 단 한주도 사지 말게. 차라리 은행의 보통예금을 하는 게 좋아.”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의미가 있는 말 같았다. 사실 그는 두 번이나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었다.

증권으로 수백억을 벌었다는 재벌 회장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증권을 하면 보통 사람은 꼭 잃게 되어 있어. 정신도 피폐해지고 말이야. 나는 다행히 실패하지는 않았네. 증권으로 돈을 벌었지. 그렇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주 예외 중의 예외야. 자네는 단 한주도 사지 말아.”

나는 그 말을 깊은 충고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둔한 나를 파악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돈을 따라가겠다는 마음을 일찍 접었다. 못 오를 나무는 아예 쳐다 보지 않겠다는 그런 심리였다. 내가 만난 부자들은 돈을 보는 눈이 열려있는 것 같았다. 굴러가는 돈이 곳곳에서 보인다고 했다. 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돈의 전도사나 부자라고 해도 운명은 별개인 것 같다.

변호사란 직업은 더러 소설 같은 다른 사람 인생의 후반부도 살짝 엿보는 경우가 있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로 돈 복음을 전하던 분이 살해됐다. 살인범은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던 착한 남자였다.

1조원의 개인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던 분이 있다. 수십만 군중에게 돈을 강의하던 돈의 전도사였다. 내가 보기엔 사람도 괜찮았다. 그런데 20년 동안 어두컴컴한 감옥 안의 똥통이 있는 한 평 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평생 돈을 신으로 모신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부자가 됐다. 그리고 폐섬유증에 걸려 죽게 됐다. 노인은 자기 돈을 모두 불태우거나 바다에 버리고 싶다고 했다.

재벌가의 집사로 오랫동안 근무한 친구가 있다. 그는 재벌가 사람들을 “돈에 대한 무한한 탐욕으로 움직이는 좀비”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어떻게 쓰겠다는 의식 없이 한없이 돈을 먹고싶은 허기로만 가득 찬 아귀”라고까지 했다.

부자를 다룬 인생 소설의 비극적인 후반부를 엿보면서 나는 가진 건 없어도 당당하게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 물론 희극이 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직접 보기도 했다.

나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 일용할 양식은 틀림없이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중 나는 새도 그 분이 먹여준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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