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벌거벗고 약점을 드러내다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내 스스로 지옥에 빠져들어 허우적 거렸다. 왜 나라는 인간은 그랬을까.
군검사로 있을 때였다. 한 변호사를 볼 때마다 내 심사가 편치 않았다. 그가 잘난 척 하는 것 같아보였고 동시에 나는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한번은 그가 나와 같이 근무하는 법무장교들을 음식점으로 초청했다. 나는 거기 가지 않았다. 청탁하는 자리를 아예 거절한다는 의식이 잠재해 있었다. 거절이라기보다는 혼자 잘난 척 했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다음날 선배장교가 나를 불러 한마디 했다.
“어제 회식하는 자리에서 그 선배가 너를 한번 되게 혼내주라고 하더라. 두들겨 패주래.”
그 말에 나는 속으로 ‘내가 왜 맞아야 해?’라고 하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그 분노가 인식의 벽에 화석이 되어 오래 남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변호사가 됐다. 이따금 모임에서 그 선배를 보면 나를 아주 미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저를 엄청 싫어하시죠?”
“예? 그게 무슨 말씀?”
그가 화들짝 놀라는 어조였다. 나는 예전에 있었던 그 회식자리를 얘기했다. 그는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선배 장교에게 저를 때려주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것 때문에 저는 선배님한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요.”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립니까? 제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있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그 선배 장교가 성격이 우락부락했던 것으로 아는데 아마도 회식 자리에 혼자 나오지 않으셔서 나를 빗대서 한마디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 분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증명해 줄 사람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하지?”
내가 오랫동안 감정의 지옥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미친놈이었다. 노신이 쓴 <광인일기>를 보면 미친놈은 주위 사람이 온통 자기를 미워하고 해치려고 한다는 망상 속에 빠져 있었다.
내가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속이 공허한 사람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잘 삐졌다. 남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본 첫인상을 솔직하게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누구든지 한번 덤벼 봐라’ 하고 싸우려는 자세 같았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나다 너는 누구냐?’라는 식으로 세상을 대했다. 모임에서도 상대방의 약점을 콕 집어서 공격하고 나를 드러냈다. 남의 얘기를 왜곡하고 내 말도 뒤틀렸다. 비평적이고 부정적이었다. 현실도 내식대로 왜곡했다. 아내는 항상 불안해했다. 솔직히 맞아 죽을까 봐 걱정이었다고 했다. 학교 시절은 주먹과 몽둥이로 맞았다.
사회에 나와서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혀로 뼈가 꺾이기도 했다. 나만큼 얻어 맞은 사람도 쉽지 않다. 기사로 사설로 칼럼으로 방송뉴스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 고소도 당하고 여러 번 소송도 당했다. 쳐 맞고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존감은 낮고 열등감이 높았다. 사회성이 없었다. 그걸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했다. 주위를 보면 나처럼 속이 공허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사는지를 살펴보았다.
이탈리아에 수억원의 수제 페라리를 주문했는데 빨리 오지 않는다고 돈자랑 하는 졸부를 보았다.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을 여러 번 하는 여성을 보기도 했다. 명품 독서모임에서 자기를 유난하게 드러내는 교수를 본 적도 있다.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면서 세상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 보려는 사회성 없는 예술가를 보기도 했다.
지식과 예술로 위장했지만 그 안에는 공허한 속을 메꾸려는 과장된 행동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특이한 조각상을 본 적이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실물 크기의 예수였다. 존경스런 모습이 아니라 혐오감이 이는 흉칙한 모습이었다. 벌거벗고 옆구리가 뚫려 피가 나오고 있었다. 하늘 쪽을 바라보면서 원망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표정이었다. 왜 신을 굳이 그런 모습으로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순간 그가 내게 말없는 말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너도 벌거벗고 약점을 말하면서 마음의 바닥을 드러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