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이게 나다, DNA’ 주신 조상님 감사합니다

“(필자의) 먼 조상은 첩첩산중 영월에 살던 중인계급이었다. 그는 어느 날 버려진 시신을 발견했다. 그 시신은 삼촌에게 살해당한 왕이라고 했다. 조선조 단종이었다. 모두들 눈치를 보며 그 시신을 방치했다. 그걸 건드리는 순간 역적으로 간주되는 시대였다. 조상은 아들과 함께 단종을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고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역적이 되는 순간이었다.”(사진은 영월군 영흥리 엄흥도 정려각). 

 

자라면서 나는 위축 되고 주눅든 적이 많았다. 부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별종의 인간 같았다. 어려서 공부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대학 나온 여자들만 보면 부러워하면서 움츠러들었다. 회사원인 아버지도 삶에 찌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밤에 마시는 소주잔에 눈물을 타서 마셨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하게 뒤틀린 성격이 형성됐던 것 같다. 나는 부조리한 현실과 마주쳤을 때 인내하고 속으로 삭이지 못했다. 불만을 터뜨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덤벼들기도 했다. 수없이 매도 자초했다. 나이 들어 돌이켜 보면 참 미숙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어리석은 짓이 많았다.

20대 중반 육군 중위 때 장교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가 사고를 친 적이 있다. 양손을 허리에 얹은 대령이 식당 문 앞에서 장교들을 엄한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를 맞은 초급장교들이 기가 죽어 슬금슬금 피해 가고 있었다. 그 대령은 사령부 내의 군기를 잡는 호랑이 같은 인사참모였다. 그와 눈길이 부딪치면 눈을 깔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서 그 눈빛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나는 눈빛으로 “나는 나다. 너는 뭐냐”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중위라는 계급은 가벼웠다. 그러나 나는 계급이 낮으면 낮은 대로 당당하고 싶었다. 대령의 눈빛이 ‘너 어디 한번 두고 보자’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날 오후 사령부의 전 장교와 하사관은 단독군장 하고 집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전체가 피곤해진 것이다. 괜한 오기를 부려 한동안 고생 좀 했다.

몇년 후 그 부대에 있으면서 또 다른 사고를 쳤다. 사령부 안에는 잘 손질된 넓은 잔디밭과 테니스장이 있었다. 병사들의 땀 흘린 수고로 만들어진 시설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군단장 한 사람만을 위해 그 잘 조성된 공원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일반 장교나 병사 그 누구도 잔디밭 벤치에 앉아서 쉬는 걸 보지 못했다. 테니스장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여름날 오후 퇴근 시간이 됐다. 육군 대위인 나는 테니스 채를 들고 테니스장으로 갔다. 군단장이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수행 비서실장과 전속부관이 군단장 옆에 긴장한 채 서 있었다. 나는 데리고 간 중위 계급장의 법무장교와 옆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굳이 그 자리에서 운동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런 시설들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 행동이었다.

군단장 수행 비서실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가지고 있는 수첩에 내가 적히는 느낌이었다. 그 다음 날이었다. 전 장교의 테니스 금지명령이 내려왔다. 나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부대가 왜 장군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업무 외에는 장군도 귀족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자연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못 배웠으면 못 배운 대로 못생겼으면 못생긴 대로 ‘이게 나다’ 하고 당당하게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 같은 존재는 세상에서 말하는 출세 내지 성공은 하기 힘들 것이라는 걸 일찍 깨달았다. 내 주제를 알았다고 할까. 하나님은 묘한 것 같다. 내 의지와는 달리 이상한 자리에 나를 데려다 놓기도 하고 보호해 주기도 했다.

30대 중반 대통령 직속기구에서 일하게 됐다. 내가 있는 부서를 만든 사람은 권력 실세였다.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고 그에게 아부하기도 했다. 그곳 사람들은 야당기질인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이상하다고 했다. 나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메마르고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곳에서 근무하는 여직원 몇 명이 내게 와서 하소연 했다.

권력 실세인 분이 성추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사실을 확인했다. 여직원들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한밤중에 권력 실세에게 올리는 글을 썼다. 원고지 위에 그의 행태를 자필로 낱낱이 썼다. 권력을 가지고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글을 청와대로 보냈다. 이틀 후 위에서 당장 나를 파면하라고 명령이 내려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성추행 한 그가 파면당해야지 왜 내가 나가야 하나 생각하고 의아해 했다.

나는 사회 적응력이 없는 바보였다. 세상에 적응하고 잘해보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남은 나 보고 튀는 행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런 유전자를 가진 조상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먼 조상은 첩첩산중 영월에 살던 중인계급이었다. 그는 어느 날 버려진 시신을 발견했다. 그 시신은 삼촌에게 살해당한 왕이라고 했다. 조선조 단종이었다. 모두들 눈치를 보며 그 시신을 방치했다. 그걸 건드리는 순간 역적으로 간주되는 시대였다.

조상은 아들과 함께 단종을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고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역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엄한 처벌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상은 여덟자로 된 간단한 글을 써 왕실에 보냈다.

‘선한 일을 했다고 처벌한다면 달게 받겠소. 해보시오’

조상은 가족을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2백년을 숨어 살았다. 나는 조상으로 부터 ‘이게 나다’라는 정신을 받은 것 같다. 없어도 못나도 배우지 못해도 당당하게 살라는 거 아닐까.

 

One comment

  1. 네, 님은 정말 아름다운 DNA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감사합니다. 하느님이 님 같은 DNA도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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