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한 승려의 떠나간 자리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영을 오물 같은 육체와 분리하는 수술과정 비슷한 건 아닐까.”(본문 가운데) 

한 젊은 의사가 내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한 스님의 죽음을 지켜 보았다는 것이다. 유명세 탓인지 권력가 부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는 그렇게 대단한 스님이 정작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아프다고 소리치고 간호사나 의사들을 못살게 굴고 삶에 애착을 가지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이다. 평생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진리를 설법하고 득도했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평생 고독을 벗 삼아 산 속에 살면서 무소유를 주장하던 그 스님은 암이 찾아오자 자신이 죽으면 관도 사용하지 말고 그냥 화장해 줄 것을 유언했었다. 그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영혼이 바라는 것과 생존본능이 담겨진 낡은 육체의 요구는 다를 수 있었다.

내가 20대 전반 해인사의 한 암자에서 아직 젊었던 그 스님과 몸과 몸이 찰나에 스친 적이 있다. 나는 출세욕으로 고시공부를 하던 속물이었다. 그는 진정한 자기를 찾아 구도자의 길을 걷던 젊은 승려였다. 나의 욕망을 마땅치 않아 하는 그의 깊숙한 눈길을 느꼈었다. 나는 반발하며 비웃었다. 미물들에게 잘먹고 잘살고 싶은 욕망을 심어놓은 것이 신이 아니겠느냐고. 신이 심어둔 깊은 뿌리를 약한 인간의 자력으로 없애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30대 중반 영혼으로 그를 만난 것 같다. 책을 통해 그의 내면을 보고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했기 때문이다. 늦가을 싸늘한 공기 속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우물 옆에서 수도승인 그는 빨래를 하고 있었다. 산속 오두막에서 그는 책을 읽으며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었다. 그의 수상집들은 나의 영혼을 세척해 주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의 소박한 삶은 내게는 하나의 등불이었다.

나는 그 스님이 산 중턱에서 한 줄기의 보라색 연기가 되어 하늘 저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세번째 만남이었다. 영정 속에서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눈길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면서 뒤에는 산속의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 몸은 사라졌지만 그는 책으로 존재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맑고 향기롭게 사는 법을 전하고 있다. 삶을 마치고 떠나간 후의 빈자리도 깔끔한 것 같다.

며칠 전 불교계에서 많이 알려진 분을 만나 서로 속 깊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스님은 아니지만 평생 불도의 길을 걸어온 ‘재가처사’라고 할까. 내가 젊은 의사가 보내온 글 얘기를 하자 그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 젊은 의사의 말이 맞을 거예요. 왜 사람들은 죽음에 기적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스님들이 앉은 채 열반에 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스님은 물구나무 선 채 입적했다는 말도 만들고 말이야. 삼국지를 보면 관우장군은 한쪽 팔을 수술하는데 다른 팔로 바둑을 뒀다고도 하잖아? 인간은 그렇지 않아요. 아파서 징징대고 안 죽으려고 하는 게 정상이야.”

많은 책이나 유튜브 영상이 인간의 죽음을 취급하고 있다. 그 핵심은 어떻게 하면 잘 죽는 것일까이다. 죽음학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교수는 인간의 죽음을 애벌레가 탈바꿈을 해서 아름다운 나비같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한 단계의 진화라고 할까. 그는 인간이 죽은 후에는 그 영이 수많은 우주의 별들을 방문하며 아름답게 산다고 했다. 그런데 그 죽음학의 대가가 막상 죽을 때는 겁을 먹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물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철창 안에 있는 호랑이를 연구하는 것과 철창 밖으로 나온 호랑이를 직접 대하는 것은 다르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인 것 같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영을 오물 같은 육체와 분리하는 수술과정 비슷한 건 아닐까.

십자가를 손에 쥔 나의 아버지는 죽는 순간 너무 졸립다고 했다. 어머니의 죽음도 비슷했다. 두 분 다 깊은 수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죽음이었다. 예수는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했다. 인간의 죽음은 어쩌면 깊은 수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 잠에서 깨면 누군가 살며시 손을 잡고 밝은 빛의 세상으로 인도해 주시리라고 믿는다.

2 comments

  1. 네 죽음……죽음이 있기에 지금 현재 이 순간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요? 네 죽음…님의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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