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느림과 비움
나는 요즈음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다. 산책할 때면 유튜브에 나오는 강연들을 듣기도 한다. 살면서 세상과 접속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따금씩 그 속의 말 한마디에서 귀중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엊그제는 마흔 살에 출가해서 혼자 암자에 사는 스님의 일상을 보았다. 남은 인생을 수행자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출가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연한 색깔로 내 마음을 물들였다. 그는 행복의 조건을 하나 잡은 것 같았다. 그동안 세상에서의 고통은 이미 그를 조각한 수행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조그마한 암자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화면에 비치는 암자로 오르는 오솔길에는 띄엄띄엄 넓적한 디딤돌이 놓여져 있었다. 그는 매일 가는 길에 근처의 돌을 하나씩 줏어 길에 놓았다고 했다.
느리게 해도 시간이 가니까 암자에 이르는 돌길이 완성되더라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잔잔한 물결같이 마음 기슭에 와닿았다. 그것은 느림의 철학이었다. 소의 느린 걸음으로도 천리를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간다면.
산책길에 한 시인의 강연을 들으면서 얻은 진리도 있다.
그는 잘나가는 출판사를 경영하다가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라는 책을 내고 감옥에 가고 폭삭 망했었다고 했다. 당시 그 책의 음란성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시골의 호숫가 근처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는 이왕 망한 거 마음까지 비우기로 한 것 같았다. 일자리도 없었다. 그는 공백이 된 시간에 노자와 장자를 2백번쯤 반복해서 읽었다고 했다.
그렇게 살면서 느낀 것들을 <느림과 비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책을 내게 됐다고 했다. 그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강연 요청들이 오는 바람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하고 있었다. 주어진 고난을 두팔 벌리고 받아들이고 힘을 빼고 느리게 살 때 뭔가가 다시 채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나의 독특한 경험이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통해 소위 명문이라는 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도 아이들은 경주마같이 본능적으로 달렸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뛰기가 싫어졌다. 마음 속으로 ‘공부야 가라’라고 선언했다.
일등이 아니라 꼴등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가방에 교과서 대신 소설을 넣고 학교에 갔다. 선생님 강의를 듣지 않았다. 필기도 하지 않았다. 봄날의 중간시험을 볼 때였다. 시험지를 받아 이름만 쓰고 잠시 후 교실을 빠져나왔다.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나에게 따뜻한 햇볕이 비추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어떤 편안함으로 가득 차 올랐다.
경주마가 트랙을 벗어나 푸른 초원으로 나간 느낌이라고 할까. 학교 교문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뭐지? 하고. 영화였다. 나는 그 길로 극장에 갔다. 그곳은 나의 천국이었다. 꼴등을 목표로 했지만 우리반의 50명 중 55등까지 해봤다. 어린 시절 내 나름대로의 비움이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입시가 있을 때였다. 나는 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고교입시가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고시 공부를 할 때였다. 빨리 합격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공부들을 했다. 어떤 친구는 독서실 칸막이에 ‘어머니 환갑까지’라는 표어를 붙여놓고 속도를 내고 있었다. 또 다른 어떤 친구는 하루에 열여덟시간씩 공부한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질렸다. 그렇게 독하지 못하게 태어났다. 고시 시험장은 내게 공포감을 주었다. 눈에서 파란 불이 튀어나오는 듯한 수재들의 치열한 전쟁터였다.
그 시절 고시에 합격한 선배가 내가 그 길을 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성급하게 열매를 따려고 하지 말고 매일같이 조금씩 나무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공부해 보라는 것이다. 자기가 고시공부를 하면서 계산해 보니까 법서를 20만쪽은 읽어야 탄탄한 실력이 형성되더라는 것이었다. 그 양이 되면 합격은 저절로 올 수 있다고 했다. 매일 천천히 쉬지 말고 책을 읽으라고 했다. 고시는 마라톤 같이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완주하면 되는 거지 굳이 금메달을 바라지 말라고 했다. 그 선배의 말에 공감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나의 음악에 맞추어 나의 박자로 길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박자에 맞추어 달려가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였다.
나는 뒤늦게 합격했다. 그런데 하루 18시간씩 공부한다면서 열을 올리던 친구나 어머니 환갑까지라고 책상앞에 표어를 붙였던 친구는 안타깝게도 끝내 합격을 하지 못한 것 같다. 간절히 염원을 하는 사람에게 행운의 여신이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나는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라는 말을 좋아한다. 화면 속의 스님이 매일 디딤돌 한 개를 찾아 암자로 오르는 오솔길에 놓듯이 매일 작은 글 하나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