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내 나라 대한민국이 왜 이리도 자랑스러운지요?”

“숲에 있을 때는 숲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물질적 성장에 걸 맞는 정신적 성숙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국가도 빵만으로 살 수는 없다. 정신적 성장이 함께해야 졸부나 덩치만 큰 미숙아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본문 가운데)

내가 있는 실버타운엔 오랜 미국 생활에서 돌아온 노부부들이 있다. 그들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고국에 죽으러 왔다고 했다. 90대 노인부부는 멋진 신세계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이 떠날 때 서울은 납작하고 짓눌린 듯한 검은 기와의 서민 한옥들과 판잣집들이 들어차 있던 서울이었다고 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출렁이는 회색의 산하였다고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국토는 온통 짙은 녹색에 산에 나무가 너무 많아 간벌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거미줄같이 뻗은 고속도로와 물이 넘실거리는 다목적댐을 보고 예전 한국에 매년 찾아오던 홍수와 가뭄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 부부는 수직으로 끝없이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들을 보면서 마치 다른 별에 착륙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지하철, 고속철도, 음식점, 상점가, 버스정류장에서 자동으로 초고속 와이파이가 잡히고 역마다 정류장마다 몇 분 후에 내가 기다리는 차가 온다는 정보가 뜨는 걸 보면서 버스를 놓칠까 도로를 보며 염려하던 과거가 떠올랐다고 했다.

바닷가 한적한 실버타운 주변 산속에서도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르면 위치추적으로 택시가 즉각 달려오는 걸 보고 기절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반들거리는 청결한 공중화장실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여유있는 집만 사용하는 비데가 공중화장실에 설치되어 있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젊은 시절 서울에서 기억나는 것은 동대문 옆에 하나 있던 공중화장실이었다. 수십년 묵은 분뇨에서 나는 각진 폭력적인 냄새가 배어있던 곳이었다. 아직도 미국에서는 건물주차장에 들어갈 때는 주차 티켓을 뽑는 데 한국은 자동인식으로 주차장에 들어가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가 방문한 집마다 반쯤 누울 수 있는 고급소파가 있고 가전 기구들을 리모컨으로 켜고 끄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방에 수십개의 음악채널을 비롯해 끝없는 채널이 있는 텔레비전의 존재는 집을 낙원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집에서 한식 양식 중국식등 어떤 음식도 배달시켜 먹을 수 있고 심지어 동해의 바닷가에서 피자를 시키면 드론이 가져다 주는 걸 보고 놀라 자빠질 지경이라고 했다.

그 노인부부는 주민등록을 하기 위해 주민센터에 가보고 놀랐다고 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수와 과자가 비치되어 있고 친절한 공무원이 노인 기초연금까지 받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가 6.25전쟁 때 장교로 참전한 보상금을 매년 미국으로 송금해 주었다고 했다.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보고 그는 또 놀랐다고 했다. 의료보험료도 치료비도 미국보다 열배는 싼 것 같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개미같이 일을 하고 저축했어도 삶의 마지막에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고 거리의 노숙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먹을 게 없어 풀뿌리를 먹고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그가 돌아와서 보는 한국은 먹거리가 산더미를 이루고 쌀이 넘쳐나 저장할 창고가 없어 사료로까지 쓰인다는 소리를 듣고 혀를 찼다고 했다. 그가 다시 본 한국은 60년대 그가 부러워하던 일본 미국을 뛰어넘은 천국이 됐다고 했다. 이런 좋은 나라를 두고 저 세상으로 가기가 못내 아쉽다고 했다.

미국의 조용한 도시에서 살다가 동해로 온 80대의 전직교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한다는 것이다. 전세가 얼마나 비싼지 정치가 얼마나 저질인지 아이들 교육비 대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하소연하며 지옥에 사는 것 같이 말한다고 했다.

그렇게 돈타령을 하면서도 늙은이나 젊은이나 고급외제차들을 가진 사람에 주식투자를 하고 아이들 과외 안시키는 집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데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전세타령을 하는데 그가 미국에서 매달 모기지로 수천불을 내던데 비하면 연 2퍼센트대의 이자인 전세라는 게 참 좋은 제도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민을 가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에 근거지를 만들고 자식을 이중국적자로 만드는 건 왜 그러냐고 했다. 풍요로운 세상에 살면서 뭐가 불안하고 왜 불만족스러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더 많이 소유하고 싶고, 남보다 더 앞서가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니냐고 했다.

연봉이 그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그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비싼 걸 먹고 더 편리하고 더 고급스런 집에서 최신 가전제품이 가득한 삶을 살면서도 왜 지옥에 있다고 하느냐고 되묻는다. 일자리에 대한 말도 많이 듣는데 해고당한 사람은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많다고 했다.

미국이 일자리가 더 안정됐다는 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미국도 한번 직업을 잃으면 다른 일자리를 얻기 쉽지 않다고 했다. 긴 미국생활 탓에 자기가 공감능력이 떨어진 것이냐고 되물었다. 내게는 너무 당연한 것 같이 생각되는 것들이 미국에 살다온 그들을 통해 새롭게 보였다.

숲에 있을 때는 숲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물질적 성장에 걸 맞는 정신적 성숙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국가도 빵만으로 살 수는 없다. 정신적 성장이 함께해야 졸부나 덩치만 큰 미숙아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민을 가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에 근거지를 만들고 자식을 이중국적자로 만드는 건 왜 그러냐고 했다. 풍요로운 세상에 살면서 뭐가 불안하고 왜 불만족스러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더 많이 소유하고 싶고, 남보다 더 앞서가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니냐고 했다.”(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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