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방송국 엑스트라한테 배운 진짜 인생
방송에 잠시 참여한 적이 있다. 시사프로그램의 재연장면에서 사회자로 등장해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이었다. 다섯 장면 정도를 찍어야 하는데 한 장면의 대사는 A4 용지 한 장 내지 한 장 반 정도였다. 적은 양은 아니었다. 작가가 만들어 준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발음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어서인지 의지가 약해서인지 대사를 미리 외워가기가 쉽지 않았다. 당혹스러운 때도 있었다. 현장에서 피디가 즉흥적으로 대사를 바꾸고 즉석에서 외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 달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화가 나기도 했다. 일류 탤런트들도 그런 때면 화장실 안에서 외우기 시합을 한다고 했다.
그때 촬영장에 같이 가던 촬영기사가 비정규직 때의 경험을 내게 얘기해 준 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침마다 수십명의 촬영기사들이 방송국 피디실 앞에서 그날 일을 기다렸다. 야외촬영을 할 프로가 생겨서 피디가 호명을 하면 그 길로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그날 일을 얻지 못한 촬영기사는 하루 종일 공치는 인생이다. 아침에 일을 잡은 사람은 기분 좋고 씩씩하게 일터로 간다. 점심시간에 일을 얻은 사람은 그제서야 활기를 찾고 부지런히 뛰어간다. 저녁이 되어도 일을 얻지 못한 사람은 밤이 늦도록 기다리다가 마지막에 쓸쓸하게 자리를 슬며시 빠져나간다.
내게 그 말을 해준 촬영기사도 아침부터 피디실 앞에 죽치고 앉아 혹시라도 자기의 이름을 부를까 하고 화장실도 못간 채 기다리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했다. 저녁에 방송국 직원들이 퇴근한 후에도 그걸 모르고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다 끝났는데 왜 아직 거기 있어?” 하는 방송국 직원의 말에 서글픈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일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건 남은 모를 거예요. 그저 일만 있다면 밤일이면 어떻고 힘든 일이면 어때요. 감사하죠. 남의 일이라도 신나게 대신해 줄 판인데”
재연 장면을 찍기 위해 그때그때 엑스트라들을 모집해 버스에 태우고 현장으로 갔었다. 뙤약볕으로 후끈 달아오른 버스 안은 열기 가득한 찜통 같았다. 엑스트라로 온 사람들은 이름없이 카메라 앞을 스쳐 가는 몇 초를 위해 끝없이 버스 안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기다렸다. 어느 날 엑스트라 몇 명에게 칼국수를 사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엑스트라 한 분이 신이 나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했다.
“지하철 역장 역할인데 대사가 한마디 있어. 정말 좋아.”
다른 엑스트라들의 얼굴에 부러운 표정이 나타났다. 대사 한마디가 그렇게 그들을 기쁘게 하는지 몰랐다.
그날 나는 엉뚱한 장소, 엉뚱한 사람한테서 삶의 심오한 의미와 가치를 깨달은 것 같다. 내 잣대로 보면 그들은 불만과 불평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했다. 하루 종일 땡볕 아래서 일하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해야 했다.
비정규직 촬영기사는 정규직 방송국 직원을 시기하고 엑스트라는 주연이나 조연을 미워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왔길래 저런 체념의 경지까지 갈 수가 있을까 놀라웠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일해온 법정은 방송국 스튜디오보다 훨씬 멋있는 무대였다. 스튜디오는 방송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뒤에서 보면 베니어판과 각목 그리고 페인트로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진짜 무대에서 나는 변호사역을 맡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대사를 쓰고 말할 수 있었다. 객석의 의뢰인은 많은 돈을 내고 들어와 구경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 엑스트라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그 이후 법정을 대하는 나의 의식이 180도 달라졌다.
“인간의 삶은 마음”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연극에서 하녀역을 맡은 사람이 나는 이런 배역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무대를 뛰쳐나가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불평불만은 마음의 가시다. 마음에 가시가 가득한 자는 자신이 그 가시에 찔리면서 산다. 혼자서만 힘들게 고생한다고 세상을 회색으로 보는 사람은 마음에 딱딱한 돌이 있는 사람같다. 마음에 돌을 지닌 자는 돌처럼 산다.
내가 본 엑스트라나 촬영기사는 마음에 보석을 지닌 사람 같았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보석처럼 살 것 같았다. 꽃나무가 꽃을 피운 것은 꽃을 마음에 그리며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언젠가 꽃피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