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노년에 이혼 고민하는 사람들
주위에 보면 늙은 남편을 백치 취급을 하는 부인들이 더러 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을 노골적으로 ‘병신’이라고 하는 걸 봤다. 남과 대화하는 남편의 얘기를 대놓고 무시한다. 남편을 제껴 두고 부인이 똑똑한 척하면서 대신 모든 걸 말하려고 한다. 그런 부인들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걸 모른다.
백세시대가 가까워지고 부부가 같이 사는 햇수가 부모세대보다 두배쯤 늘은 것 같다. 그 긴 세월을 소 닭보듯 그렇게 정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사랑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던 때가 있었을까. 동호회에서 말이 통하는 이성이 차라리 끌리지 않을까.
돈 벌 능력을 상실한 후 무시당하고 정물이 된 남편들에게 묻고 싶다. 쪼그라든 채 그렇게 삼식이 취급받고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으냐고. 서럽게 사느니 차라리 어딘가 떠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나이 칠십에 이혼한 친구를 봤다. 몸이 아픈 그는 아내의 도움이 진짜 필요한 때였다. 그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다.
“평생을 살고 이제와서 왜?”
내가 안타까운 마음에서 물었다.
“친구나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정말 잘하는 척해. 반찬도 가져다 내 앞에 놔주고. 모두들 정말 좋은 부인을 뒀다고 칭찬을 하지. 그런데 둘이 있을 때는 달라. 내가 아파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였어. 물 좀 가져다 달라고 세번을 말해도 신경조차 쓰지 않더라구. 돈을 벌어다 줄 때는 그래도 최소한은 했는데 이제는 대놓고 면박을 주고 무시하는 거야. 어쩌다 밥을 차려줄 때 보면 반찬에 성의가 조금도 담겨있지 않아. 내가 이혼하자고 했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훨씬 자유롭고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황혼의 남자측에서 이혼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일흔일곱 살의 노 의사가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혼자 월셋방을 얻어 자신의 속 옷을 빠는 걸 봤다. 심장 분야 최고 권위자이고 그의 이름으로 의료센터가 지어지기도 했었다. 그는 팔십 가까이까지 진료실을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면서 환자를 봤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땅도 사고 상가도 사고 집도 사서 모두 아내나 자식의 이름으로 해줬다. 진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아내는 끝없는 불평 불만에 잔소리를 하면서 돈을 벌어오라고 다그쳤다.
그는 아내와 다 큰 자식들을 태운 마차를 끄는 힘이 다 빠진 늙은말 같은 신세처럼 느꼈다는 것이다. 집을 나온 일흔일곱 살의 노인은 조그만 월세방에서 혼자 밥을 지어 먹고 빨래를 해도 그쪽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변호사로 이혼소송을 하다 보면 천사 같은 성품을 가진 부인이 있고 거의 악마에 가까운 여성을 보기도 한다. 남편측도 마찬가지다. 불륜에 이중생활을 하면서도 껍데기만 남은 가정을 유지하는 걸 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두 여자 또는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관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상대방의 신뢰를 배신한 자다. 로맨스가 아니라 위선이다. 착한 사람들은 단 한번밖에 결혼을 못해봐서 그런지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부인이나 남편 같으려니 하고 사는 것 같다.
젊은 시절 딸 셋을 키우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월급봉투를 가지고 집으로 오는 날이 되면 아내는 딸 셋을 귀가하는 아버지 앞에 서게 하고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아내와 딸들의 그 감사에 한달 노동을 한 피로가 싹 가신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힘들게 살아도 감사가 있으면 그 삶은 보석처럼 빛난다. 세월이 가고 그 아버지가 정년 퇴직을 했다. 잘 자란 딸들은 유명 일간지 기자가 되고 교사가 되고 공무원이 됐다. 딸들은 엄마와 함께 지금도 아버지에게 잘한다. 지혜로운 부인을 가진 친구였다.
내가 감동했던 또 다른 부인의 얘기다. 남편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감독이 됐다. 동창은 천만관객의 영화를 만들고 이름을 날리는데 남편은 실패를 거듭했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 청력에 이상이 생겼다. 검사한 결과 모든 기능은 정상인데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착한 우리 남편의 재능을 저는 알아요. 저는 남편의 소망을 꺾지 않기 위해 전세보증금을 빼서 남편 손에 쥐어줬어요. 돈보다 더 귀한 게 남편을 인정하는 마음일 것 같아요. 저는 남편이 기죽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아내는 평생 동네 아이들 피아노 레슨을 해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항상 밝고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혜로운 좋은 아내는 하늘이 준 최고의 축복이다. 나쁜 아내의 천대를 받으며 황혼에 쪼그라든 채 사는 것은 지옥일지도 모른다. 나는 황혼의 이혼을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다. 혼자 걷다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어도 자유로운 영혼이 좋지 않을까.
물론 여성 측으로 입장을 바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