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사교육 전쟁’은 왜 일어날까?

“상고를 나온 노무현 대통령은 혼자 공부를 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법대를 나와도 낙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해 50여명을 뽑던 시절이었다. 고시 합격으로 그는 능력이 충분히 인정됐다. 그러나 그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꼬리표는 대통령이 될 때까지 무시당하는 근거로 따라다녔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기존과 다른 교육방식을 그려내 주목받았던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 한 장면 <사진 터치스톤픽쳐스>

박노해 시인의 글에서 대학에 대한 그의 절규를 본 적이 있다. 가난으로 대학 대신 공장에 다니던 그는 대학이 많은 지식과 인격의 산실로 알았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알고 보니 지성이 아니고 끼리끼리 학연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무서운 조직이더라는 것이다.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인연이 실적이나 평가보다 앞서고 좌도 없고 우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대학은 지식이 아니라 출세의 사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온 대학은 해병대전우회, 호남향우회와 함께 대한민국 3대 마피아조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같은 대학 출신이라면 처음 보는 사이라도 끈끈하다. 사회적 평가나 공정면에서 그래서는 안되지만 심정적으로 학연이 큰 몫을 한다. 그게 현실이었다. 시인이 그렇게 볼 만했다.

재벌급 반열에까지 올랐던 두 명의 성공한 사업가를 변호한 적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은 IT 계통에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은 나오지 않았어도 천재성이 있었다. 그가 특별한 기술을 개발해 인정을 받았다. 대기업이 그의 기술을 사려고 했다. 그는 그걸 거부했다. 그는 삼성이나 현대를 누르는 재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어느날 그가 내게 이런 한탄을 했다.

“우리 사회에 학연의 그물망이 정말 촘촘하게 짜여져 있는 것 같아요.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그 그물망을 뚫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가 정확하게 현실을 보았을 것이다. 그가 정관계 언론계에 전방위로 뿌린 돈이 게이트 사건이 되어 한동안 신문과 방송에서 들끓은 적이 있었다. 재벌회장이 되어도 대학졸업장이 없는 그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것 같았다.

일타강사 출신으로 학원 재벌이 된 또 다른 사람도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아무리 돈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대학출신이 아니면 세상은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구속이 되어 재판을 받을 때였다. 재판장은 최고 명문대학을 나오고 20대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재였다. 재판장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피고인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압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 근처까지 높이 올랐다. 뜨거운 열기가 부실한 밀납날개를 녹이자 그는 한없이 밑으로 추락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릅니다.”

일타강사 출신 학원재벌 회장의 대답이었다. 그는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재판장이 던진 이카루스의 날개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일까 생각해 봤다. 그 이면에는 아마도 대학을 나오지 못한 면도 한 자락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이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의미는 무시당하지 않고 인간 취급을 받는 조건인 면이 있다. 더러 고시로 대학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도 대학은 걸림돌이 되는 수가 있다.

서울대입시에서 실패하고 2차 대학에 간 친구가 있었다. 집념을 가진 그는 20대에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무섭게 일을 했다. 그가 속한 과의 일을 거의 혼자서 다 처리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어느 날 외무부 공무원들이 회식을 하는 자리였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던 그는 담당국장이 옆의 과장과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열심히 일을 하는 건 알지만 출신 대학 때문에 승진서열을 앞으로 해주기는 힘들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외교관이 되어 평생을 열심히 일해도 출신대학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이 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

최고의 미녀 탤런트를 한 언론이 신상을 털어 대학을 나오지 않은 걸 밝혀 망신을 주는 걸 본 적이 있다. 신도 수십만을 이끄는 교회 목사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걸 문제 삼는 걸 보기도 했다.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해도 대학을 나왔느냐,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고 따지는 세상이다.

상고를 나온 노무현 대통령은 혼자 공부를 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법대를 나와도 낙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해 50여명을 뽑던 시절이었다. 고시 합격으로 그는 능력이 충분히 인정됐다. 그러나 그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꼬리표는 대통령이 될 때까지 무시당하는 근거로 따라다녔다.

사교육의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한 교수가 “대학에는 문제가 없다”고 쓴 글을 읽었다. 나는 그가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그와 생각을 달리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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