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고시 출신 노무현이 좋은 세상 만들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그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좁은 법조계에서 우연히라도 한번 스칠 만한데 인연이 없었다. 문재인 변호사와는 한번 김밥으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다.
5공 청문회 때 스타가 된 노무현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였다. 엘리트 법조인들은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노무현이란 존재는 대통령이 되자 법조계에 강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동안 법조계는 골품제 비슷한 두꺼운 조직 안의 내밀한 봉건 질서가 있었다.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오고 소년등과나 수석합격하고 재벌가와 인연을 맺은 법조귀족이 최고의 자리를 독점했다. 보이지 않는 그들만이 통하는 회로가 있었다.
노무현 돌풍은 그런 봉건의 벽을 단번에 사정없이 파괴해 버렸다. 기라성 같은 검사장들이 사표를 썼다. 대통령이 그들의 제자뻘 되는 젊은 여성을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법조귀족들이 나가라는 메시지였다. 노무현 돌풍은 바다의 윗물과 아랫물을 바꾸는 현상을 가져왔다.
배경이 약하고 대학졸업장이 없는 게 더 이상 수치나 주눅이 들 이유가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가난과 고난이 자랑스러운 훈장이 됐다. 법조계의 화학적 변화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더욱 강한 사법개혁을 추진해 그루터기의 뿌리째 뽑아내고 제도 자체를 바꾸어 버렸다.
비난도 있었다. 대통령 개인의 컴플렉스가 정치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엘리트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분노로 터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안티세력이 형성된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조사하는 특별검사보가 되라는 제의를 받고 거절한 적도 있다. 그는 법조계만이 아니었다. 좌충우돌하면서 대한민국을 끌고 간 것 같았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그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노란리본의 애도 물결이 세상을 덮었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 달동네 임대아파트에서 폐암에 걸려 혼자 죽어가는 노인의 소송사건을 맡게 된 적이 있다. 노인이 누워있는 임대아파트의 어둠침침한 방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장작개비 같이 빠짝마른 노인이 혼자 누워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었다. 소년 시절 자동차 수리공으로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천재였다. 그의 인생여정이 독특했다. 젊은 시절 인도 등 세상을 흐르며 내공을 쌓고 나이 육십이 넘어서 누에고치가 실을 뿜어내듯 시를 쓰겠다고 계획했었다고 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했다. 그러나 담당 의사는 너무나 분명한 탁구공만한 폐암의 흔적을 간과했다. 그는 작품을 쓸 시간을 잃어버리게 한 의사가 괘씸하다고 했다.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받은 배상금으로 죽은 후 자기의 시집을 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엉뚱하게 인생에서 감사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가 한 말을 기억에 남는대로 옮기면 이렇다.
“저같이 평생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이런 임대아파트의 방에 하루 종일 누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좋은 세상입니다. 주민센터에서 쌀도 가져다 주고 돈도 줍니다. 또 봉사자들을 보내서 목욕도 시켜 줍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복지정책의 은혜입니다. 저는 정말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분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시인의 말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의미를 처음 알았다. 유언 같은 시인의 말은 진정성이 순도 백퍼센트였다. 시인의 말을 죽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혼이 듣는다면 어떨까.
어제 밤 책상 위에 놓였던 스마트폰의 유튜브 화면에서 갑자기 임기 4년 차의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린아이가 이빨이 썩는 줄 모르고 사탕을 자꾸 달라고 하듯이 국민들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인기나 지지도가 떨어져도 사탕을 막 주지 않겠다고 했다. 양심에 비추어 바른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노무현이 바라는 것은 먼 훗날 국민들의 진솔한 평가라고 했다. 나는 죽어가는 시인의 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진가를 확인했다. 내게 “고시 출신 노무현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나?”라고 질문하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띄운 분이 있다. 죽은 시인의 말로 그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