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이중근 회장 고향사람들에 거액 지급, 이렇게 생각한다

“이중근 회장은 친척에게도, 같이 군 복무를 한 전우에게도 현금을 지급했다. 그가 쓴 금액은 2400억원이 된다고 했다. 그가 돈을 쓴 방법이 아주 화통하고 직접적이었다. 종교단체나 대학 아니면 국가기관을 통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기부자나 받는 사람의 행복감이 더 높을 것 같다. 직접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니까.”(본문 중에서) 사진 부영 이중근 회장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이야기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죽기 전에 신부에게 스무가지 정도 사항이 적힌 질문서를 보냈다. 그중 부자가 천국으로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는데 그 의미가 뭐냐고 물었다고 한다.

성경 속에서 부자 청년이 예수에게 천국에 갈 방법을 물었다. 예수는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다. 청년은 그 말을 듣고 그냥 슬며시 물러났다. 돈을 준다는 것은 나의 살점을 뜯어 남에게 주라는 말과 비슷할 수도 있다.

낙타 같은 부자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자기가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것도 중간의 점잖은 옷을 입고 있는 도둑들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다.

평생 사 모은 부동산이 거액이 된 의사가 있었다. 그가 병으로 저세상으로 가게 됐을 때 착한 사위와 딸에게 그 재산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사위는 양심적인 법관으로 알려진 분이었다. 나와도 친하게 인연을 맺고 있었다. 사위인 그는 장인에게 재산을 종교단체와 대학에 기부하시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그 말 속에는 자신과 딸이 욕심내지 않고 상속을 포기한다는 의사도 들어있었다. 장인은 사위의 착한 뜻을 받아들여 종교단체와 대학에 각각 수십억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후 10년쯤 세월이 흘렀다. 법관인 사위는 장인이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였나 궁금했다. 그는 고시에서 떨어져 절망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가난한 청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종교단체에서 장인이 기부한 돈을 10년 넘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확인하고 따지자 그제서야 종교단체에서는 종교지도자의 기념관 건립에 그 돈을 쓰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배신감이 들었다.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장인에게 건의하고 그 자신도 상속을 마음속으로 포기한 것이었다.

그는 종교단체의 책임자에게 따졌다. 책임자는 그를 보면 피하고 공식적인 답변은 일단 기부했으면 그 사용은 그들의 자유재량이라고 했다. 장인이 돈을 기부한 대학도 그 사용처가 분명하지 않았다. 일부는 교수들의 해외연수 시에 사용한 것 같았다.

그 법관은 내게 소송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권위있는 종교단체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들은 따지는 기부자를 못마땅해 하면서 오히려 자기들은 돈이 많다고 교만한 행동을 보였다.

내가 아는 한 부자노인은 수백억의 재산을 방송국에 기부하면서 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에 써달라고 유언을 하고 죽었다. 큰 방송사라면 믿을만하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유언대로 재단이 만들어졌다. 저명인사가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저명인사인 재단이사장은 화려한 호텔에 자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만찬을 주최하고 방만한 재단 운영을 하는 것 같았다. 양노원을 세워달라고 부탁받은 요지의 부동산을 방치해 거액의 세금폭탄을 맞기도 했다.

기념식장에서 기부자 노인의 기억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사무국장이나 직원 자리는 방송국에서 퇴임한 사람들이 차지했다. 기부를 한 노인의 자식들이 내게 소송을 의뢰했다. 부두 노동자출신의 아버지는 그 돈을 모으느라고 평생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처절하게 산 분이라고 했다.

재판하는 자리에서 나는 흥분해서 그 저명인사의 위선을 규탄했다. 죽고 난 후의 재산이란 그렇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살아서 직접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든 두살의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개인적으로 고향인 순천의 운평리 마을 사람들과 동창들에게 최대 일억원씩 지급한 사실이 알려졌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도와준 분들을 생각해 재산을 나눠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운평리 죽동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상경해 야간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는 운평리 초중학교 동창생들에게도 돈을 지급했다.

이중근 회장은 친척에게도, 같이 군 복무를 한 전우에게도 현금을 지급했다. 그가 쓴 금액은 2400억원이 된다고 했다. 그가 돈을 쓴 방법이 아주 화통하고 직접적이었다. 종교단체나 대학 아니면 국가기관을 통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기부자나 받는 사람의 행복감이 더 높을 것 같다. 직접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니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