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변호사의 문답’···엄상익 묻고, 이우근 답하다

그가 지나가는 말투로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구두표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어. 그걸 우리 아이 학교 선생님을 가져다 드리라고 했지. 그런데 선생님이 반 전체 학생들이 있는 앞에서 우리 아들 망신을 줬다는 거야. 판사면 뇌물을 많이 먹을 텐데 겨우 이거 가지고 왔느냐고.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 이우근 부장판사의 그 분노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이중섭의 ‘황소’ 

아래 글은 엄상익 변호사가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시절, 서울지방법원장 출신의 이우근 변호사를 인터뷰해 <대한변협신문> 2011년 6월 6일자에 게재한 것입니다. <아시아엔>은 12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황소 같은 판사

이우근 재판장을 보면 꼭 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잔꾀를 부리는 범죄인의 얘기도 그냥 덤덤하게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내면에 존재하고 있던 후덕한 결정대로 판결을 선고했었다. 법정이라는 화려한 무대와 검은 법복은 그를 분장하는 요소가 되지 못했다. 주인공이 거물이면 나머지는 소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많은 판사들의 표정은 법대에 앉았을 때 달라졌다. 그러나 그는 자연인 그 자체일 뿐이었다. 부장판사 시절 그가 변호사인 내게 밥을 산 적이 있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밥 먹는 자리에서 그가 지나가는 말투로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구두표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어. 그걸 우리 아이 학교 선생님을 가져다 드리라고 했지. 그런데 선생님이 반 전체 학생들이 있는 앞에서 우리 아들 망신을 줬다는 거야. 판사면 뇌물을 많이 먹을 텐데 겨우 이거 가지고 왔느냐고.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

이우근 부장판사의 그 분노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바뀐 직업, 변호사

그의 변호사 개업을 신문에서 본 지도 5년이 넘은 것 같다. 회색 구름이 낮게 내려와 있던 2011년 6월 2일 오후 2시경 남대문 근처의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조그마한 사무실 그의 책상은 서류뭉치들이 키자랑을 하면서 반쯤 점령하고 있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이라는 자리에 있었다. 변호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판사를 할 때는 내가 싫어도 사건을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변호사를 하니까 나에게 선택권이 생겼어요. 또 공직에 있을 때는 매여 있었는데 이제 시간도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구요. 자유를 얻은 거죠. 조심하지 않고 직접 사람들과 많이 만나다 보니까 시야도 넓어진 것 같아요.”

법복에 갇혀 있던 그의 영혼이 변호사가 되자마자 에너지를 내뿜었다. 칼럼을 쓰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신학대학원을 나갔다. <바보가 그리운 시대>라는 책을 엮기도 했다. 검은 옷 속에서 자제했던 그의 영혼이 무지개 빛 같이 다양한 정신적 르네상스를 맞이한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변호사면 모두 같은 변호사지 지위고하가 없잖아요? 그리고 변호사를 하다가 대통령도 장관도 교수도 뭐든지 할 수 있죠. 다른 업종으로 바꿔도 상승이나 하강이나 그런 개념이 아니예요. 얼마나 좋은 직업입니까? 변호사라는 그 자체가 너무도 큰 성취라고 생각해요.”

법관들 중에는 변호사를 개업할 때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가치기준의 문제였다. 응징하는 권력이냐 자유냐의 문제다.

그가 쓴 책을 보면 어린왕자처럼 가진 돈의 액수보다는 오후 세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기형도나 천상병 시인 같이 영혼의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를 철학을 하는 변호사로 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를 현실의 변호사세계로 끌고 내려올 필요가 있었다. 그게 인터뷰를 하는 나의 임무였다.

변호사의 마케팅 전략

“변호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무엇을 팔아야 합니까?”
내가 물었다.

“미국 유머에 변호사의 묘비 얘기가 나와요. 죽은 어떤 변호사의 묘비에 ‘그는 변호사였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다’라고 적혀 있더랍니다. 미국 사회에서 변호사는 나쁜 놈이란 인식이 깔려있는 걸 반영하는 유머죠. 저는 모임에 가서 그랬어요. 한국에서만은 앞으로 ‘그는 변호사였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다’라고 만들어야 한다고. 많은 변호사들이 생존전략으로 어떤 분야를 전문으로 하면 돈을 잘 벌까를 탐색하는 것 같아요. 법기술자만을 추구하는 거죠. 저는 변호사가 먼저 건강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뢰인이 결국 사고 싶어하는 것은 좋은 성품을 가진 변호사의 정직과 신뢰가 아니겠어요? 그게 단번에 되는 게 아니죠. 인문학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자신을 보석같이 갈고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변호사의 일 자체가 숭고한 소명이 되어야 합니다. 변호사를 정치나 돈의 발판으로 삼으면 절대 좋은 평가를 못 받을 거예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었다. 배고픈 변호사는 맹수보다도 무섭다고 하는 말이 있다. 가난하고 힘들던 병아리 변호사 시절 돈만 준다면 악마라도 변호할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삶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법원장을 지낸 그는 화려한 전관경력자였다. 그의 말은 자칫하면 가진 자, 배부른 자의 낭만으로 오해될 수도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 묻기로 했다.
“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북에서 피난민으로 내려온 집안입니다. 어려서부터 여유있게 자라지는 않았어요. 아버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죠. 그렇지만 틈틈이 다른 세계를 꿈꿨어요. 대학 때는 신춘문예에 도전해서 매번 떨어지기도 했죠. 음악도 문학도 좋아했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죠르바를 읽으면서 느꼈던 문학적 감동은 정말 뭐라고 할까? 밤하늘에 쏟아지는 영롱한 별빛을 본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런 거였어요. 가난해도 가난하다는 생각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판사가 된 이후에는 그 월급으로 가족들이 먹고 살고 아이 교육을 시켰죠.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살았죠.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아이들 학원에 보내고 싶었는데 사교육비를 댈 능력은 안됐죠.”

“변호사를 하시고 지금은 어떻습니까?”
내가 다시 확인했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씀 드렸죠? 돈의 노예가 되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해서는 안 될 사건은 맡지 않았어요. 아들 둘도 이제 다 컸으니 뒷바라지가 필요 없죠.”

돈을 벌 기회가 많은 데도 그는 절제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결코 티를 내지 않고 겸손 속에 그걸 숨기고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가난을 우리는 청빈이라고 부른다.

무너뜨려야 할 우상

“변호사가 추구해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수많은 후배 변호사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싶어서 물었다.

“변호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불법과 불의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정당한 법집행의 피해도 봤어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많이 싸웠어요. 공권력에 의한 피해구제를 위한 투쟁이죠. 그런데 변호사로 판단을 받는 입장이 되니까 이상할 때가 있어요. 법원의 결론이 다른 거예요. 그럴 때면 내가 판사를 할 때 잘못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판사의 편협성을 그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궁극적으로 변호사들은 현대의 우상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우상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는 이념논쟁이 있어요. 또 역사에서도 민족주의라는 한 가지 기준만을 내세우고 거기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해 칼질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장지연 같이 일제시대 살았던 선인들을 반민족행위자라고 몰아버리는 걸 봤습니다. 그 시절의 피눈물 흘린 고통을 전혀 모르는 지금의 사람들이 과연 돌을 들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완용 같은 경우까지 다 용서하자는 건 아닙니다. 경제면에서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살자는 욕망이 가득합니다. 변호사들의 비리는 거기서 생기는 거죠. 모든 분야에서 그런 거대한 우상들이 나타나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그런 우상들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걸 실천하는 무기로서 법이 필요한 거구요.”

그의 법개념은 이미 평범을 넘어 종교적, 철학적 수준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죄와 벌

“죄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수십년 경력을 가진 법률가의 인간관을 알고 싶었다.

“저는 남의 집을 턴 강도범이 길을 나오다가 차에 치이기 직전의 어린아이를 보고 목숨을 걸고 살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이 절대적인 구별이 아닌 상대적인 거라는 거죠.”
실제로 재판을 해보면 많은 법률가의 잠재의식 속에 범죄인은 또 다른 종류의 존재였다. 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죄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감옥에 가기 전에 이미 악마가 던진 탐욕의 그물에 잡힌 거죠. 이미 그의 영혼이 갇혀 있는 상태예요. 현실적인 감옥은 상관이 없을지도 몰라요. 변호사의 임무는 그걸 깨우쳐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변호사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정말 고차적으로 승화된 임무를 수행하는 거죠. 그런데 변호사 중에는 그 자신이 먼저 탐욕에 갇혀 버린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경우는 구치소에서 피의자와 변호사가 접견을 해도 둘 다 똑같이 구속되어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를 꼼짝 못하게 하는 여러개의 욕망의 끈에 붙잡혀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이 그걸 생각했는지 이렇게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빵장수 야곱이란 책에 동물원 호랑이를 가둔 건 쇠창살이 아니라 창살 사이의 공간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예 철저히 막혀 있으면 호랑이는 구속되어있는 자체를 몰라요. 그런데 그 빈 공간을 통해 저쪽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갇혀 있다는 걸 자각하는 거죠.”
화두 같은 말이었다.

그의 인품에서는 한여름에 어울리는 상큼한 장미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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