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천국과 지옥

예수를 꾸짖는 대심문관, 윌리엄 샤프 작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도스토옙스키의 대하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대심문관의 전설’과 ‘양파 한 뿌리’라는 두 개의 액자소설이 등장한다. 액자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을 말한다.

1권 끝부분에 나오는 대심문관의 전설은 ‘최종적이며 반박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 비판’이라고 평가될 만큼 당시의 교회에 대한 날카로운 질책이다. 여기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천국을 ‘용서가 있는 곳’으로, 지옥을 ‘사랑이 없는 곳’으로 정의한다.

?2권 앞부분에 있는 ‘양파 한 뿌리’는 한번도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가 지옥에 떨어지자 이를 불쌍히 여긴 수호천사는 그녀가 생전에 베푼 단 하나의 선행, 언젠가 거지에게 양파 한 뿌리를 건네준 일을 기억해내고 하나님께 그녀를 구원해달라고 간청한다. 하나님은 그녀가 양파 한 뿌리를 붙잡고 지옥에서 나올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가 양파를 붙잡고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때 지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할머니를 붙잡고 따라 오르려고 하자, 할머니는 “이 양파는 내 것이야”라고 외치면서 그들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양파는 툭 끊어졌고 할머니와 죄인들은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다. 할머니와 다른 죄인들의 관계가 끊어지자, 할머니와 천국을 이어주는 양파도 끊어졌다.

?이 모습을 본 수호천사는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나간다. 천사는 할머니의 유일한 선행을 근거로 그녀를 용서하고 구원하려 했지만,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상태로 몰아간 그녀의 이기심은 결국 자신과 천국과의 관계도 단절시키고 말았다.

어차피 양파 한 뿌리로는 할머니 한 사람도 끌어올릴 수 없었다. 양파 한 뿌리는 하나님이 기적의 은총으로 내려주신 유일한 구원의 통로였다. 구원의 길은 그처럼 볼품 없고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선지자 이사야는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묘사했다(이사야 53:2).

우리가 보잘것 없는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그와의 관계를 단절해버리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되고 구원의 통로도 막혀버린다. 천사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지옥이란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의 자리’라고 믿었다. 지옥은 다른 곳이 아니다. 사랑의 관계가 끊어진 자리다, 미움과 분노가 가득한 삶의 자리, 거기가 곧 지옥이요 천사가 눈물을 흘리는 자리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사랑이 넘치는 자리, 거기가 곧 천국이요 천사가 눈물을 거두는 자리일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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