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20세기의 순교자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수많은 인종분쟁으로 얼룩졌던 20세기는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못잖은 순교의 시대였다. 20세기의 순교자가 초대교회 100여년 동안의 순교자보다 더 많았다는 연구보고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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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성당 서쪽 벽면에는 전 세계에서 선정된 20세기의 신?구교 순교자 10명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유럽에서는 나치에 처형된 본회퍼 목사가 있다.
러시아의 경우 볼셰비키혁명 때 살해된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죽은 폴란드의 막시밀리안 콜비 신부가 순교성인으로 선정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열여섯 살 만체 마스메올라가 기독교도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친부모의 손에 맞아 죽으며 순교했다.
이와 함께 우간다의 이디 아민 독재정권에 의해 암살된 자나니 루움 성공회 대주교가 순교성인 명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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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로 넘어와서는 1966년~1976년 벌어진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에 순교한 왕즈밍 목사가 있다.
파키스탄에선 이슬람교도인 형의 손에 살해된 파키스탄의 에스터 존 선교사가 있다.
이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게 피살된 뉴기니의 루시안 타피에디 선교사가 포함됐다.
미주 지역에서는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조각상에 새겨졌다. 당시 군사정권의 독재와 경제적 착취에 저항한 로메로 주교는 미사를 집전하다가 암살됐는데, 엘살바도르 군사정부를 지지하는 미국 특수요원들의 범행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로메로 주교를 해방신학자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는 해방신학의 계급투쟁을 지지한 성직자가 아니었다.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불의한 정부에 저항한 적극적 사회참여에서 해방신학과 유사한 모습이 보였을 따름이다.
25만명의 추도객이 모인 그의 장례식장에서도 폭탄 테러가 일어나 4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로메로>가 제작되기도 했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맞게 된 죽음을 순교로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로마시대 이래로 거의 모든 순교가 정치권력에 의해 발생했다.
?사랑의 복음을 신앙의 삶으로 실천하다가 정치권력에 걸림돌이 되면 죽음의 희생에 이르는 것이 순교의 오랜 역사다.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북한 공산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 정치범으로 처형된 순교자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를 양자로 받아들인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애양원(愛養園)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에게 끌려가 총살을 당해 순교했다. 20세기의 순교자들을 추모하며 한국전쟁의 달 6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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