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홈리스와 하우스리스

“​아파트는 날로 늘어가는데, 가족간의 알뜰살뜰한 옛정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집이 없는 사람을 홈리스(homeless)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우스리스(houseless)일 뿐이다. 집은 있는데 가정이 깨어진 상태야말로 ‘홈리스’다.”(본문 가운데)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David Riesman)은 현대인의 심리적 특징을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사실상 단절된 인간관계(Alone with Everyone) 즉 ‘군중 속의 고독’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군중 속의 고독보다 더 슬픈 고독이 있다. ‘가정 속의 고독’이다. 가족 간의 유대와 신뢰가 깨어진 가정파탄이야말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일 것이다.

​아파트는 날로 늘어가는데, 가족간의 알뜰살뜰한 옛정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집이 없는 사람을 홈리스(homeless)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우스리스(houseless)일 뿐이다. 집은 있는데 가정이 깨어진 상태야말로 ‘홈리스’다.

경제적 불황과 빈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이혼, 자살, 가출이 늘어나고, 그만큼 결손가정의 청소년도 급증하는 비극적 상황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10만명 당 24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이혼율도 부부 세쌍 중 한쌍 꼴로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이혼 비즈니스’라는 신종 사업이 영업 중이고, 심지어 “성공적인 이혼을 도와준다”는 엽기적인 이혼 전문 인터넷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이 타락상이 소위 선진국 현상이라면, 차라리 빈곤한 후진국에서 살고 싶어진다.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이뤄진 가정은 반드시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부부관계란 부유하고 건강할 때는 사랑하고 가난하거나 병들면 사랑을 버리는 잇속 밝은 상거래(商去來) 관계가 아니다.

더욱이 가정은 부부만의 영역이 아니다. 자녀들과 더불어 삶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따뜻한 사랑의 자리다. “어린아이 앞에서는 악마도 무력(無力)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자녀들 앞에서는 부부간의 갈등도 무력해져야 마땅하다. “왕국을 다스리는 일보다 가정을 다스리는 일이 더 어렵다.” <수상록>(隨想錄)을 쓴 몽테뉴의 탄식이다.

​가정 해체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신뢰를 상실한 인격의 파탄이 그 근본 원인이다. 자녀에게서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부모, 어버이와 소통하기를 꺼리는 아들딸, 이들 사이에 가로놓인 불신의 벽이 가정을 무너뜨린다.

가정 해체는 이웃과의 단절을 불러오고 이웃과의 단절은 공동체 해체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인간성이 상실된 정글의 아귀다툼으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지옥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이렇듯 심각한 가정 위기의 시대에 먼저 신앙인들의 가정에서부터 신뢰관계가 회복되어야 하겠다. 신앙의 가정은 그 자체가 하늘의 소망을 공유한 믿음의 공동체요, 하나의 작은 교회 곧 가정교회(Home Church)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개인과 가정을 따로 보지 않는다. 개인과 가정을 하나로 보고 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 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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