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6.25의 불행을 ‘사랑과 화평’의 길로

“오늘 6.25 전쟁 73주년이다. 남북분단과 가족 이산의 불행을 70년이 넘도록 가슴 깊이 간직한 우리는 공산주의 무신론자들이 빚어낸 고통과 불행을 아직 다 씻어내기 어렵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6.25 당시 부산 동광동 피난민촌.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1년에 네번 금식하는 절기를 지켰다. 유대력 넷째 달에는 예루살렘을 침략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고 바벨론으로 잡아간 사건을 기억하며 슬퍼하는 금식이었다.

다섯째 달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사건을, 일곱째 달에는 유대 총독 그달리아가 암살당한 사건을, 열째 달에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해 이스라엘이 절망과 비탄 속에 빠진 사건을 기억하며 통곡하는 금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70년 동안 이어온 이 금식들이 올바른 금식이 아니라고 꾸짖으신다. “너희가 70년 동안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도 너희를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냐?”(스가랴 7:4~6)

‘선지자 스가랴’ 미켈란젤로 작품, 바티칸 시스틴경당(經堂)

선지자 스가랴는 형식적인 종교의례의 금식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금식이 아니라고 질책한다. 우리의 슬픔, 우리 역사의 아픔을 스스로 위로하는 금식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스가랴는 그 거짓된 금식을 올바른 금식으로 돌이키는 길을 가르쳐준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넷째 달과 다섯째 달, 일곱째 달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이스라엘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스가랴 8:18-23)

참된 금식은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화평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진리를 사랑하고 화평을 실천하는 것은 금식처럼 어렵고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과 고통이야말로 역사의 비극을 바르게 기억하고 치유하는 길이라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참된 금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눠주며, 떠도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이사야 58:4~7)

사랑과 화평을 실천하는 것이 참된 금식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 6.25 전쟁 73주년이다. 남북분단과 가족 이산의 불행을 70년이 넘도록 가슴 깊이 간직한 우리는 공산주의 무신론자들이 빚어낸 고통과 불행을 아직 다 씻어내기 어렵다.

금식하며 슬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들에 대한 원한(怨恨)을 되새기며 보복을 다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가 아니다.

​6.25의 불행을 바르게 기억하는 일은 동족상잔을 일으킨 전쟁광(戰爭狂)들을 회개의 자리로 이끌어, 압제당하는 북한동포들을 자유하게 하고 그 멍에를 꺾어주는 사랑과 화평의 길일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우리 스스로 애쓰고 인내하며 고통을 짊어지는 분투(奮鬪)의 발걸음이 참된 금식이요, 불행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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