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멈춤, 기적의 자리

“음악은 음표와 쉼표로 이뤄진다. 쉼표가 없는 노래, 멈춤이 없는 음악은 연주하기도 힘들고 듣기도 어렵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고난의 길목에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멈춤의 자리를 펴고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본문 가운데) 이미지는 음표와 쉼표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지닌 모터스포츠 경기 포뮬러1(Fomula 1)에 피트 스톱(pit stop)이라는 규정이 새로 도입되었다. 주행거리가 60km 가량 더 늘어난 이 슈퍼레이스 경기에서 최고 시속 270km로 질주하던 차량들이 두 개 이상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기름을 넣기 위해 3초 동안 정차하는 피트 스톱이 의무화된 것이다.

3초 동안에 두 개 이상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기름을 넣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멈춤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승부가 가려지게 된다. 멈춤이 달리기를 좌우하는 것이다.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는 사람은 신체의 모든 동작을 멈추기 마련이다. 몸의 바쁜 움직임이 명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유(思惟)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여러 잡다한 생각들에 빠져있다면,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의 미로를 벗어나야 한다.

진실이 아닌 것을 향해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릇된 길을 돌이켜 생각을 바르게 가다듬는 것은 참 자유와 생명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멈춤이다. 달려야 할 때 달리지 않고 머뭇거리는 것은 미련한 일이지만, 멈출 줄 모르고 줄곧 달리기만 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이르렀을 때, 파라오가 기마병을 이끌고 추격해 온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둥대며 울부짖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선포한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출애굽기 14:13~14)

모세의 선포에 따라 발걸음을 멈춘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고, 멈추지 않은 채 마냥 달려오던 파라오의 기마병은 모두 물에 잠겼다. 이스라엘은 멈춤의 자리에서 기적처럼 구원을 얻었고, 파라오의 기마병은 멈출 줄 모른 채 멸망의 자리로 달려갔다.

​안식일을 히브리어로 사바트(ָׁתבַש)라고 합니다. 사바트는 ‘쉰다, 멈춘다’는 뜻이다.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단순한 정지상태가 아니다.

사람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소망의 시간, 내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믿음의 자리다.

​이스라엘이 아모리인들과 싸울 때 태양이 중천(中天)에 멈췄다는 기록이 여호수아서와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여호수아 10:12). 지동설이 확립된 오늘날의 과학으로는 태양이 움직이거나 멈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말한다. 비과학적이지만, 우리의 일상적 언어표현이다. 태양이 중천에 멈췄다는 성서의 기록을 기적으로 믿는 이도 있고 상징적인 표현으로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멈춤의 때가 이스라엘을 기적 같은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감람산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폴 고갱) 

​음악은 음표와 쉼표로 이뤄진다. 쉼표가 없는 노래, 멈춤이 없는 음악은 연주하기도 힘들고 듣기도 어렵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고난의 길목에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멈춤의 자리를 펴고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누가복음 22:39~42). 그 멈춤이 자유와 생명으로 나아가는 기적의 자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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