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하나님은 왜 그리 슬퍼하실까?
슬프거나 괴로울 때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 눈물은 기쁨이 있기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의 기억들이 말끔히 사라지면서, 그동안 맺혀있던 서러움이 눈물로 터져 나오는 슬픔의 보상(報償)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고생하며 실패를 거듭했던 일이 드디어 성공하자 감격해서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지만, 실은 그동안 남모르게 쌓였던 아픔이 한꺼번에 북받쳐 오르면서 해소되는 심리적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예레미야를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른다. 예레미야가 슬픔과 아픔의 선지자였다는 뜻이다. 온 이스라엘이 죄와 불의와 거짓으로 타락해가던 주전 7세기, 선지자 예레미야는 40년 동안 마르지 않는 눈물로, 억누를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와 공의를 선포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권력을 거머쥔 세도가들과 종교권력을 누리던 제사장들은 예레미야를 모질게 핍박했고, 백성들도 그를 배척했다. 결국 예레미야는 옥에 갇혔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핍박과 고난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슬픔은 곧 하나님의 슬픔이었고, 그의 눈물은 바로 하나님의 눈물이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며 우셨다(누가복음 19:41).
화려하게 치솟은 헤롯의 대성전, 유대 땅 곳곳에 자리 잡은 회당들, 엄숙한 예복을 입고 토라(???????)와 미슈나(????)를 강론하는 제사장들… 이처럼 엄숙한 종교성으로 한껏 치장된, 그러나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예루살렘을 안타깝게 여긴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신 것이다.
?그보다 6백여 년 전,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 서서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다”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외쳤다.(예레미야 7:4). 당장 돌에 맞아 죽을 신성모독의 행위였지만 예레미야는 그 신성모독을 통해 참된 신성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눈물 속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눈물이 담겨 있었다. 아니, 하나님의 눈물이 깊게 배어 있었다. 이스라엘을 향해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은 그들의 죄악과 거짓을 탄식하시는 슬픔의 눈물이었다.
?지금 이 나라 이 사회는 그 어느 때 어느 곳보다도 깊은 죄악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불신(不信)사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제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거센 불신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 이 땅을 향해서도 예레미야처럼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 않을까 두렵다. 예레미야는 부르짖는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고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라.”(예레미야 7:5) 그 슬픔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뀌는 날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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