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순교자들을 생각한다

제암리 순교 현장.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스코필드 선교사가 찍은 사진이다.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公認) 이전, 크리스천들은 혹독한 박해와 순교의 위험 속에서 살았다. 사도바울이 활동했던 시절의 네로 황제와 요한계시록의 시대적 배경이 된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의 박해는 매우 잔혹했다.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되는 <박물지>(博物誌)의 저자 대(大)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는 네로에게 ‘인류를 파괴하는 세상의 독(毒)’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현인(賢人)황제로 알려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쓴 스토아철학자였는데, 그는 기독교를 미신으로 규정하고 크리스천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그때 처형됐다.

기독교 박해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주후 3세기의 군인황제 시대까지 이어졌는데, 데키우스 황제는 로마의 신과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을 처형했고,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크리스천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했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교회당을 파괴하고 성서를 불태웠다.

​그렇지만 로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독교 신자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자, 갈레리우스 황제는 주후 311년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년 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리노 칙령을 발표했고, 주후 380년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데살로니카 칙령으로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삼았다. 로마의 탄압을 받던 기독교가 대제국 로마의 국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중세 이후의 신‧구교전쟁 시기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고, 그 순교의 역사는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알 길이 없지만, 연구자들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이후 지금까지 크리스천 순교자의 수는 약 7천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치독일의 히틀러 치하에서 약 100여만명이 순교했는데, 본회퍼 목사는 “미치광이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면서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처형됐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비난한 맑시즘을 추종하는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 약 1500만명이 순교했고, 문화혁명을 전후한 모택동 시대의 중국에서 약 90만명,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수십만명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20만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학살당했다.​

솔제니친

신학교의 우등생이었던 스탈린의 공산주의 체제가 기독교인을 대량 학살한 만행에 대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솔제니친은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망각하면 순교의 비극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지킨 순국영령들과 함께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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