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큰 악인과 큰 선인···좋은 대통령 탄생하면 좋겠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아시아엔=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재벌 회장이 되었다는 그는 선인(善人)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착실히 교회에 나가고 헌금도 많이 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도 했다. 그는 군살이 없는 날렵한 몸에 미남이었다. 사업을 하는 그는 권력가들과 형님 동생하면서 격의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그는 경제계에서 기업 인수에는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어떤 중소기업 사장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사장은 내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

“제가 평생을 일구어낸 기업이 자금난에 빠져있었습니다. 회장님이 그걸 아시고 투자를 해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죠.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것처럼 제가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런데 회장님이 대표이사 명의는 내가 그대로 가지고 있고 일단 경영권만 먼저 넘겨줬으면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 대표이사 명패랑 도장을 넘겨드렸죠. 그랬더니 투자는 하지 않고 제 명의로 약속어음만 막 발행하는 거예요. 앞이 캄캄했습니다. 제 빚만 늘어나고 저는 파멸하는 거 아닙니까? 바닷가의 조개를 주워서 속만 파먹고 껍데기는 버리는 야비한 사람인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돌려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어떻게 하던가요?”

내가 물었다.

“건달들을 보냈어요. 제가 호텔에 끌려가 감금이 됐는데 저의 주식 전부에 대해 양도각서를 쓰라는 겁니다. 돈 한푼 못 받았는데 말이 안 되는 거죠. 감금되어 있다가 간신히 탈출해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저를 조사하는 형사가 상부에서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나보고 기업경영에 관한 민사사건에 불과한데 무조건 합의를 하라는 겁니다. 강도를 당했는데 제가 도대체 합의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 회장의 비열한 이면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시행사를 하면서 조직적인 사기행위를 하고 주가를 조작해서 천문학적 돈을 모은 것 같았다. 그는 돈으로 권력을 샀다. 누가 고발을 해도 권력은 그의 편이었다. 그의 천재적인 머리에 걸리면 죄가 없어도 감옥을 갔다. 그에게 농락당해 감옥에 간 사람을 변호할 때였다. 회장인 그와 둘이서만 만나 합의를 얘기할 때였다. 승리감에 도취한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죄인 만들기도 쉽더구만. 일곱명의 가짜증인을 만들고 그 중 한명이 고소를 하게 하는 거야.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일곱명이 입을 맞추어 증언하면 검사나 판사는 누구를 믿겠어? 그 친구들은 숫자에 꼼짝 못하거든. 증거주의니까 말이야. 게다가 나는 평소에 미리미리 검사들에게 쥐약을 먹여놔. 뇌물을 쓰거나 변호사를 사지 않고 권력을 빌리는 더 확실한 방법도 있지. 권력 가진 놈들의 동생이나 가족을 내 비서실에 두는 거야. 그렇게 인질로 잡아두고 월급형식으로 뇌물을 주면 내 말이면 벌벌 기게 되어 있어. 판사보다 내가 더 마음대로 유죄 무죄를 만들 수 있어. 내가 조작한 증인들에게 말을 바꾸라고 하면 무죄가 되는 거야. 판사들은 눈앞의 말만 현미경으로 보듯 보는 허수아비야. 진실을 말해봐 제대로 듣나?”

그는 내게 증인들의 진술을 번복하는 거래 댓가로 25억원을 요구했다. 그는 악인 중의 악인, 큰 악인이었다. 그런 큰 악인은 이상하게도 세상이나 교회에서는 선인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선인도 작은 선인이 있고 큰 선인이 있는 것 같다. 선행을 하고 신문에 나는 건 작은 선인들이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 누구나 갈 수 없는 영광의 길

그런데 큰 선인들을 보면 선을 행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위선자나 악인, 이단, 독재자라고 평가받는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민족종교의 교주는 평생 검소하고 깨끗하게 살았다. 수많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자신을 위해서나 자식을 위해 돈 한푼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죽어 땅에 묻혔다. 그는 이단자 취급을 받고 의심을 받았지만 큰 선인이 분명한 것 같았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 가난한 나라를 부자나라로 만든 박정희 대통령도 수많은 욕을 먹었다. 그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하면서 자기의 길을 갔다. 그리고 총에 맞아 죽었다.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인류의 영혼을 바꾸어 놓은 예수도 마귀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작은 선인과 작은 악인은 세상이 쉽게 알아보지만 큰 선인은 악인으로, 큰 악인은 선인으로 착각하는 세상이다.

대통령은 큰 악인일 수도, 큰 선인일 수도 있다. 좋은 대통령이 탄생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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