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귀하 호주머니엔 ‘영원한 화폐’ 몇닢 있나요?

“이상한 게 있어요. 돈을 받고 업소에 출연하면서 이 정도 무리를 하면 집에 드러누워 꼼짝 못하고 몸살을 앓을 건데 봉사를 한 날은 저녁에 다시 공연을 나가도 꺼떡 없어요.”(본문 가운데). 위 이미지 성냥팔이 소녀 <출처 사이버오로>

실버타운에서 생활하는 팔십대 중반의 의사 선생이 있다. 그는 일주일에 이틀씩 그곳에 묵는 노인들을 위해 무료 진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일정금액의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의사는 돈을 받으면 을의 위치가 되는데 그게 싫다고 사양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의사자격증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되어 실버타운에 들어와도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선행이었다. 바닷가 몰려와 하얀거품을 내고 물러가는 파도를 보기도 하고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면서 글을 쓰려고 온 나에게도 법률상담을 하겠다는 노인이 찾아왔다. 마음을 열어놓고 상담을 해 주었다.

자기가 가진 기능으로 선을 행하는 변호사 자격증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전직 교장 선생님이 노인들을 찾아가 신문을 읽어주는 봉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국어 선생님 출신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셰익스피어 강의를 하기도 했다. 나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작은 힘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20여년 전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던 한 여성이 기억 저편에서 되살아난다. 정상참작 자료로 쓰기 위해 나는 그 여성의 과거 선행을 물어보았다. 그녀가 며칠후 봉지에 가득 담은 영수증들을 가져와서 보이며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정형편상 대학을 못가고 청계천 길 뒷골목에 있는 작은 회사의 사원으로 있었어요. 어느 겨울 아침 출근할 때 육교에 앉아있는 거지 노인을 봤는데 너무 추워 보였어요. 그래서 지갑에서 천원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드렸죠. 그런 버릇이 생기니까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불쌍한 사람이 소개되면 월급에서 만원씩 떼서 고정적으로 부치기도 했어요. 마음이 끌리는 대로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십년이 되고 이십년이 지났네요. 변호사님이 말씀하셔서 보내온 영수증들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큰 금액이네요. 저도 이제야 제가 얼마나 돈을 냈는지 알았어요.”

가난한 그녀가 선행을 한 돈의 합계금액은 거액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중국 옷을 사다가 멕시코에 팔고 있는데 수입이 괜찮다고 했다.

또 다른 착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마당에 하얀 접시꽃이 피어있던 나환자촌에서였다. 40대 쯤의 그녀는 가득 모인 나환자들 앞에서 가야금병창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워커힐 가야금식당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공연시간에 급하게 가야 하는 그녀를 내 차로 역까지 데려다주는 도중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명인들한테서 20년간 소리를 배웠어요. 그 재능으로 워커힐 가야금식당에서 하루에 두 차례 공연을 해요. 공연하는 사이의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봉사를 해요. 내가 가진 재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때가 행복해요. 돈이 없는 대신 재주가 있으니까 그걸 잘 써먹어야죠.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돈을 받고 업소에 출연하면서 이 정도 무리를 하면 집에 드러누워 꼼짝 못하고 몸살을 앓을 건데 봉사를 한 날은 저녁에 다시 공연을 나가도 꺼떡 없어요.”

역 앞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급하게 가는 그녀의 주위에서 향기가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시로 한 방울씩 선을 마음의 병 속에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보답이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병에 선행이 차면 좋은 결과가 온다고 믿는다. 아니 그 분은 늦추지 않고 순간 순간 보상을 주시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원인 모를 기쁨이 속에서 흘러나오는 게 그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 돈을 벌려고 온 것일까. 사업을 이루기 위해 온 것일까 아니면 어떤 지위에 가기 위해 온 것일까. 미래의 심판대에 가게 됐을 때 죄인인 우리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뭘 말해야 할까?

재벌회장님들은 돈이 자신의 정상참작 자료가 될까? 대통령 경력이나 사회적인 명성이 감형 요소가 될까? 현명한 재판장인 그분은 죄를 탓하기보다 네가 행한 작은 선이 무엇이었느냐에 더 신경을 쓰실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돈은 벌었어도 선을 행하지 않은 하루는 손실의 하루였던 것 같다. 유명해져도 선을 행하지 않은 하루는 타락의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을 행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게 아닐까. 그 선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 온 건 아닐까. 만사 제쳐놓고 작은 선을 행하는 것이 저 세상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영원한 화폐를 얻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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