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촌철] 당신의 ‘가장 큰 욕망’은?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시내에 나갔는데 플라타너스 잎들이 모두 살아서 나를 반기면서 손을 흔드는 것 같았어. 원인 모를 환희로 나는 가득 찼었어.”(본문 가운데) 사진은 겨울 플라타너스.

두물머리 부근 강가 허름한 집에 혼자 사는 친구가 있다. 이제는 칠십 노인이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인 그는 그나마 조금 있던 다리의 힘이 빠져나간다고 했다. 무덤이 많은 그의 집 주변은 밤이 되면 적막감이 감돌고 으스스한 기운이 돈다. 그런데 그는 항상 얼굴에 행복감이 가득하다. 밤에 혼자 있을 집은 천국이라고 했다.

외로움이나 쓸쓸한 감정을 가져 본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그런 충만한 감정에는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별빛이 비치는 밤이 되면 혼자 집에서 예전의 선비들 같이 끊임없이 성경을 읽고 있다.

나는 그의 평화가 어디서 왔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요르단의 모압광야에 가서 한 밤을 지냈던 경험이 있다. 거친 돌무더기와 흙먼지만 날리는 삭막한 곳이었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었다.

성경은 들짐승과 전갈 그리고 뱀이 산다고 기록해 놓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1인용텐트를 치고 한밤중을 지냈다.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아 성경 속 인물을 흉내내어 보려고 했다. 광야의 밤은 서늘하고 귀기어린 것 같았다. 거친 바위산 사이로 보랏빛 하늘이 보이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였다. 냉기가 나오는 듯한 느낌이 어느 순간 갑자기 변했다.

어떤 포근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두려움이 사라졌다. 은은한 기쁨이 안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소풍을 가는 아이같은 가벼운 마음이 되어 그 주변을 걸어다녔다. 그 순간은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분명 신비한 체험이었다. 나는 그분의 영이 내게 스며들어 마치 마약에 취하듯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고 믿는다.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도 분명 어떤 기운이 그에게 소리없이 스며들어 그렇게 할 것 같았다. 얼마전 강가에 사는 그 친구가 묵호의 바닷가에 있는 나를 찾아와 밤새 이런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중에 이런 말이 기억이 난다.

“내가 대학 시절 부잣집에 입주해서 그 집 아들을 가르쳤어. 당시 대한민국 소득세 납부 랭킹 1위면 대단한 재력가 집안이었지.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그 집이 폭삭 망하고 아들 부부는 당장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가난하게 됐다는 거야. 오래 소식을 끊고 살았지만 그런 사정을 알고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정 뭐하면 내가 혼자 사는 집에 같이 살게 하자는 생각으로 물어물어 그의 집을 찾아갔지. 가난의 바닥까지 간 건 맞는데 그 부부의 얼굴은 기쁨으로 천사 같았어. 도대체 어떻게 그런 행복한 미소가 나오는지 그건 신비였어.”

나는 대충 짐작이 갔다. 많은 재산을 가져보았던 그들 부부는 이미 세상의 욕망들을 벗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끝없는 욕망에도 단계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딛고 올라온 욕망의 사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되돌아보았다.

가난했던 나는 지갑에 두둑하게 지폐를 넣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재물욕이었다. 칭찬받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뻐기고 싶었다. 명예욕이었다. 검사가 되어 밀실에서 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고 싶었다. 권력욕이었다. 끊임없이 성욕에 시달리기도 했다. 항상 따라다니는 그런 욕망은 죽어야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욕망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욕망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학문적 욕망이 있고 문학에의 욕망이 있고 일에 대한 욕망도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정신세계에서 ‘진아’를 찾는 욕망도 생기는 것 같았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욕망 세상의 욕망을 온전히 끊으려는 욕망이다.

욕망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높은 욕망이있고 낮은 욕망이 있었다. 비천한 욕망이 있고 귀중한 욕망이 있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욕망은 낮고 비천한 욕망을 말한다. 나는 낮고 비천한 욕망을 버리고 보다 높은 욕망을 구하려고 마음먹어 봤다.

욕망의 최고봉은 하나님을 보려는 욕망 같다. 그건 하나님의 영이 마음에 임했을 때의 평화와 기쁨, 만물이 모두 새롭게 되어 수풀 속에서 지저귀는 산새의 소리까지도 천사의 음악처럼 들릴 때의 즐거움이다. 얼마 전 음악을 하는 한 친구의 이런 말을 들었다.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시내에 나갔는데 플라타너스 잎들이 모두 살아서 나를 반기면서 손을 흔드는 것 같았어. 원인 모를 환희로 나는 가득 찼었어.”

그런 진짜 기쁨을 알고 싶다.

플라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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