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나의 수첩…마음에 와닿는 대목 쓰고 외우고

“찬송을 하면서 해변을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걷기도 한다. 성경이나 100년 전 현자들의 믿음이 담긴 글 중 마음에 와 닿는 것을 그 수첩에 적고 외우기도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또 다른 기도행위라고 생각한다.”(본문 중에서) 사진은 필자가 일상적으로 거닐며 글쓰는 소재를 떠올리는 동해안 해변 <네이버 블로그>

한동안 예쁘거나 특이한 모양의 수첩을 사서 모았다. 인사동의 노점에서 파는 수제 수첩을 구하기도 하고 가죽으로 장정한 공책을 사거나 인도에서 두꺼운 종이로 만든 투박한 수첩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수첩들을 손 글씨로 빼곡하게 채웠다. 나의 일상과 느낌을 적기도 하고 만난 사람들과 대화한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말을 기록해 두기도 했다. 그 수첩들을 변호사의 상담일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세월이 30년이 넘다 보니 나의 글소재들의 창고가 됐고 그 양이 제법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선 적이 있었다. 나를 신문하는 변호사가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말없이 가지고 간 내 수첩을 보여주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빈 공간 없이 들어찬 수첩의 페이지를 보더니 공격하던 변호사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얼마 전 블로그와 컬럼에 내가 소송을 담당했던 JMS사건에 관한 나의 생각을 짧게 쓴 적이 있다. 악의가 섞인 댓글들이 날아왔다. 그중에는 20년 전 일을 제대로 기억도 못하면서 왜곡시킨다는 비난도 있었다. 정말 그럴까? 그 사건에 관한 당시 나의 메모 분량은 원고지로 치면 1500장도 넘을 것이다. 법정뿐만 아니라 법정 밖에서 취재하듯 만난 JMS 지도자들, 중간의 간부들, 피해자들, 반대편에서 싸우는 단체를 이끌어가던 사람들 개개인의 말들이 다 들어있다.

말뿐만 아니라 순간순간의 상황과 증거서류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메모광적인 성격이 있다. 그것만 아니라 여행 등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그렇게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수첩에 그렇게 나의 삶을 쓰는 것은 일종의 수행의 의미도 있다. 쓴다는 것은 순간순간 나는 어떤 말을 했지? 어떤 행동을 했지? 그때 내 마음은 어떤 상태였지? 하고 나 자신을 살펴보는 셀프카메라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기록을 하다보면 내 욕심에서 튀어나온 말이나 잘못된 말과 태도가 바로 체크 된다. 수첩에 기록해 갈수록 정직해지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말을 신중하게 하게 된다. 그 기록은 발표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는 업무상 기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증인으로 나가 진실을 말하고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 공적인 경우는 예외다. JMS의 경우에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자료가 있지만 인터뷰에도 개인적인 질문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공적인 인터뷰에 응할 때에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추상적이고 에둘러 말한다. 자칫하면 누구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선한 면만을 언급하려고 노력한다. 욕심 같으면 세월이 지난 후 당사자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상황이나 인물 설정을 바꾸어 소설을 쓰고 싶지만 일흔 고개를 넘은 나이라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다.

수첩 얘기를 하다 잠시 엉뚱하게 방향이 빗나갔다. 나는 각종 수첩을 수집하다가 수첩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일본의 작가 마츠모토 세이쵸의 글을 읽고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 일본 작가는 원고지를 축소해서 자기의 작업복 윗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수첩으로 만들었다. 노동을 하면서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몽당연필로 그 수첩에 글을 조금씩 써갔다고 했다. 그걸 보고 나도 을지로 뒷골목의 인쇄소에 의뢰해서 주머니에 들어갈 나만의 수첩을 만들었다.

10년전부터 거기다 연필로 또박또박 빈칸을 채워나갔다. 일기도 쓰고 변호사의 일상 업무도 썼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베껴 쓰기도 했다. 요즈음은 그 수첩들을 기도용으로도 사용한다. 그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그 안에 성경속 시편 23장을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다. 필사로 기도하는 것이다. 해변에서, 기차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어디든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한다. 내게는 상념이 없어지는 기도 방법인 것 같다.

나는 기도 방법을 다양화했다. 찬송을 하면서 해변을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걷기도 한다. 성경이나 100년 전 현자들의 믿음이 담긴 글 중 마음에 와 닿는 것을 그 수첩에 적고 외우기도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또 다른 기도행위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이 댓글로 요즈음은 하나님과 어떻게 대화를 하느냐고 물으시기에 두서없이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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